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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아기용품& 출산 당일 남편의 역할

by 수호천사1009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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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기용품, 현명하게 마련하는 법

임신하고는 아기를 볼 수 있는 정기검진일이 기다려졌는데 32주 차 정기검진은 더! 아주 더! 기다려졌어. 드디어 공식적으로 의사 선생님에게 성별을 물을 수 있었거든. 사실 15주 차부터는 외부로 드러난 성기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을 구분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료법으로 태아의 성 감별 행위를 금지했어. 의료법 제20조에 따르면 태아의 성 감별을 목적으로 임신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 안 되고 임신 32주 이전에 임신부나 임신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도 안돼.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물을 수는 없는데 궁금하긴 해서 초음파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성별을 짐작했거든. 초음파 영상 중 다리 사이가 찍힌 부분을 캡처해서 보고 있으니 선생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알겠더라. 그래도 틀릴 수 있으니 32주 차 검진에서 확실히 물어봤지.

아기 성별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아기용품을 준비하기로 했어. 남자이니 파랑, 여자이니 분홍 식으로 용품을 골랐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골랐어.

우리 첫째는 남자아이야. 주변에서 주로 파란색 배냇저고리를 선물해 주시더라. 그래서 우리가 직접 살 때는 파란색을 빼고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초록색 등 골고루 샀지. '남자는 파랑' 공식도 고정관념이지만 역으로 '남자는 분홍'도 고정관념을 의식한 선택이니까. 부모로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색을 보여주기로 했지.

아기가 쓸 용품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야. 보통 기저귀 가방이나 아기띠를 살 때 아내가 고르는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막상 아기가 태어나서 외출하면, 한 사람이 아기띠를 메면 다른 사람이 기저귀 가방을 들고, 한 사람이 기저귀 가방을 들면 다른 사람이 아기띠를 메지.

그런데 기저귀 가방에 꽃무늬가 가득하면 들기 꺼려하는 아빠들이 있어. 들더라도 기꺼이 들진 않지. 꼭 남편만의 잘못은 아니야. 같이 쓸 물건이니 처음 고를 때부터 같이 고르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야.

나 같은 경우는 아기띠를 양복 위에도 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샀어. 남편 퇴근길에 마중 나가면 남편이 아기띠를 넘겨받을 테니까. 아기가 태어난 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가면 남편이 양복 위에 아기띠를 하고 셋이 산책하곤 했거든. 그 모습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진짜 멋졌어.

베이비샤워를 하며 아기 물품들을 많이 받았어. 아기 잠자리를 마련하고, 모빌과 배냇저고리, 가제수건, 기저귀 등만 들여놨는데도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 아기용품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집안 분위기는 그만큼 더 달라졌지.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이제 시선을 두는 곳마다 아기용품이 보인다며 우리 집이 아기 집으로 바뀐 것 같다고 하더라.

아기가 태어나니 당연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우리 집'이기도 하잖아. 아기용품이 늘어갈수록 '나만의 공간'을 사수하기로 했지. 결혼하고 남편과 같이 살면서 힘든 점이 모든 곳을 공용의 공간으로 인테리어를 했더니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 숨을 공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침대 옆에 작은 서가를 마련하고 내 책으로만 채웠어. 나는 침대에 기대어 책 읽는 걸 좋아하거든. 그리고 한쪽 공간은 남편만의 공간으로 만들었어.

아기가 태어나면 늘 아기와 함께 있을 거야. 더욱 내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서가는 아기용품 금지구역으로 만들었어. 아기가 태어나고 변비에 걸렸다는 부모들이 많아. 진짜 변비에 걸리는 게 아니라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 있고 싶은데 집안에서는 그런 공간이 없으면 괜히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래 머문다는 뜻이야. 부모가 되고 들은 유머인데 마냥 유머로 들리진 않더라. 시쳇말로 웃펐지. 아기가 태어나고 변비에 걸리지 않으려면 지금 '내 공간'을 만들어봐.

 

2. 가족분만? 무통주사? 미리 고민하기

출근하려는데 남편이 갑자기 산모수첩을 내 가방에 넣었어. 정기검진일이 아닌데 막달이 다가오니 불안해서 휴대전화를 놓을 수가 없다는 거야.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니 무덤덤했는데 오히려 지켜보는 남편은 불안했나 봐. 나는 '내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가 가장 불안했다면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없을 때 진통이 시작되면 어떻게 하지?'가 가장 걱정이었다고 하더라. 남편은 언제 운전하게 될지 모르니 회식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고 사적인 모임은 가급적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든든했지.

알고 보니 분만 과정에서도 선택해야 할 게 많더라. 자연분만의 경우에는 일반분만을 할지 가족분만을 할지, 일명 무통주사라고 불리는 경막 외 마취를 할지 말지, 탯줄을 남편이 자를지 의료진이 자를지 등 말이야. 남편도 나도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을 것 같으니 미리 정해놓기로 했어.

먼저 가족분만. 가족분만은 자연분만의 과정과 동일하지만 진통, 분만, 회복까지 전 과정을 가족분만실이라는 한 공간에서 진행한다는 점이 달라. 일반적인 자연분만은 진통을 하다가 분만이 시작되면 분만실로 이동하거든. 남편이나 가족은 진통할 때는 같이 있지만 분만실로는 산모만 가는 거지. 반면 가족분만은 전 과정을 가족분만실에서 진행하니 분만 과정에 남편이 함께 있을 수 있어.

나는 가족분만을 하고 싶었어. 진통은 태어나 처음 겪는 고통이라는데 혼자 감당하려니 두려웠거든. 마라톤에도 페이스메이커가 있는 것처럼 남편이 옆에서 힘이 되어준다면 덜 두려울 것 같았지. 그리고 우리 아이니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부모인 나와 남편이 같이 맞아주고 싶었어.

남편은 망설였어. 나에게 힘이 되고는 싶지만, 가족분만을 하며 분만의 전 과정을 볼 자신이 없다더라. 임신하기 전 분만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남편은 나보다 더 보기 힘들어 했거든. 아기 머리가 나올 때 나는 '드디어 아기가 나온다!' 하며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 집중했지만, 남편은 '아기 머리가 저렇게 큰데 얼마나 아플까?' 하며 내가 겪을 고통이 더 크게 보인다고 했지.

솔직히 말하면 다큐멘터리를 보며 나도 내 몸에서 일어날 일이 경이로운 동시에 충격적이었어. 진통은 함께하더라도 분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 게다가 남편은 평소 조금만 피를 봐도 자지러지는 사람이거든. 주변에서 가족분만을 한 남편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부부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 고민스럽더라.

전문가들은 가족분만은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 식의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충분한 교육을 받고 부부간의 상의를 거쳐 준비해야 할 일이라고 했어. 남편들이 분만 과정을 보고 충격 받는 것은 충분한 교육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거지.

진통과 분만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그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을 알고, 어떻게 도울 것인지 계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정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우려와 달리 대다수의 산부인과는 가족분만을 하더라도 내진이나 경막 외 마취,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등 산모가 노출을 꺼리는 순간에는 남편을 커튼 뒤나 분만실 밖에서 대기하도록 해. 우리 부부는 가족분만을 하되 내가 원하거나 남편이 원할 때 분만실 밖에 잠시 나가 있기로 했어.

최근에는 제왕절개 분만의 경우에도 남편이 참관할 수 있는 병원들이 생기고 있어. 

무통주사는 정확히 말하면 척수신경막 사이에 가느다란 관을 넣고 희석한 마취제를 주입해 하반신의 감각 신경을 마취시키는 '경막 외 마취' 주사야. 자궁문이 4~5센티미터 열렸을 때 마취를 시도하는데 무통이라고 해서 통증을 아예 없애주는 건 아니고 개인에 따라 5~20퍼센트 통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대.

무통주사를 맞으면 진통이 더 길어진다는 속설에 대해 대한산과마취학회는 경막 외 마취 후 처음 10~15분은 자궁의 수축이 일시적으로 느려질 수 있지만 30분 내에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밝혔어. 분만 과정이 30분 연장된다고 해도 무통주사로 인한 여러 장점을 생각할 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 또 무통주사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경막 외 마취는 척수에 직접적으로 주입되어 혈액에 거의 도달하지 않는대. 소위 말하는 '무통발'이 너무 잘 받아서 출산 직전 힘을 줘야 할 때에도 진통이 느껴지지 않아 힘줄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산모들도 있는데 의료진이 힘을 주라고 할 때에 힘을 주면 되는 그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제 때 힘을 주지 못한다면 경막외 마취를 중단하고 남은 약물은 분만 후 파열된 회음부를 봉합할 때나 통증이 심할 때 쓰면 돼.

 

3. 출산 당일 남편의 역할

남편은 '나는 어떻게 도울 수 있지?'를 물어봤는데 나도 출산이 처음이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들라고 말하기가 어렵더라. 일단 내가 바라는 걸 떠올려봤어. 많이 긴장할 것 같고 겁이 날 것 같아. 정신도 없겠지. 그러니 남편이 차분히 내 곁을 지켜주면 좋겠어.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며 이미 많이 지나왔고 조금 더 힘내면 우리 아이를 품에 안을 것임을 알려주면 좋겠어.

전문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 진통 초기엔 임신부를 안정시키고 아내의 관심을 진통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라고 조언했어. 깔깔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어주는 등 아내의 마음이 가벼워지게 도우라는 거지.

진통이 시작되기 던까지 아내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집중했다면, 진통이 시작된 뒤엔 아내의 요구사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좋아. TV를 잘 보다가도 소리가 금세 거슬려질 수도 있고 이불을 덮어달라고 했다가 30초도 지나지 않아 치워 달라고 할 수도 있거든.

또 진통하는 동안은 아내가 호흡을 잘 유지할 수 있게 리드해 주고 진통이 사그라지면 또 한 번 해냈다고, 잘했다고 격려하며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해. 하나 신경 써야 할 것은 아내가 호흡운동을 불편해하는 기색이면 억지로 강요하지 마. 지금은 진통의 고통을 덜어내는 게 목적이니 도움이 되는 다른 활동을 같이하는 게 좋아. 아내가 더워할 경우 차가운 수건을 목덜미에 대주거나 얼굴이나 몸을 닦아주는 것도 도움이 돼.

경험해 보니 출산이 임박할수록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아. 어떤 말에도 거슬리기 때문에 진통이 한창일 때는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잠깐 숨을 돌릴 때는 지그시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가장 큰 힘이 됐어.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자연분만 중 분만이 잘 진행되지 않아 제왕절개를 하게 될 상황에 대비해 금식하지만 남편까지 금식할 필요는 없잖아. 남편이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나를 더 잘 살필 수 있고. 그래서 냄새가 나지 않고, 간단하지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몇 가지 준비했어. 남편이 좋아하는 떡과 건과일, 우유 등을 준비해 출산 가방에 넣었지. 고마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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