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승선을 무사히 통과하려면
우와, 드디어 마지막 달이네. 정말 수고했어. 내가 임신 10개월이었을 때 자주 들은 말 중 하나가 '벌써 10개월이야? 시간 빠르다' 였거든. 그런데 나에게는 '벌써 10개월' 보다는 '드디어 10개월'이었어. 신경 쓸 것도 많고, 불안하기도 하고, 변해가는 내 모습이 낯설어서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렀거든.
'이번 달에는 어떤 변화가 있지?, '지금 이 증상이 정상인가?' 등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지낸 적이 있었나 싶었지. 그러다 보니 10개월 차에는 임신이라는 마라톤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더라. 결승선이 보여서 힘이 났지.
정기검진에서 의사 선생님도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하시며 '임신 37주부터는 아기가 언제 태어나도 혼자 숨을 쉬며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정산기'이니 느긋하게 아기가 보내는 출산 신호를 기다려라' 하시더라.
그렇다고 배 속 아기의 성장이 멈추는 건 아니야. 배 속 아기는 스스로 면역항체를 만들지 못해. 태반을 통해 엄마의 면역항체를 전달받지. 10개월에는 면역성분을 공급받는 등 기능적인 성장을 해. 그리고 성장을 완벽하게 마치면 배 속 아기의 부신에서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 코티솔이 분비되면 자궁경부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하고 골반이 이완되거든. 아기가 태어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면 엄마의 몸은 아기를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하는 거지.
출산 신호를 기다리는 동시에 마지막 점검도 잊지 말아야 해. 우선 집안을 한번 둘러봐.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갈 계획이라면 최소 2주는 집을 비우게 되잖아. 남편이 먹을 밥과 국을 소분해 냉동해 놨더니 남편이 감동해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나를 위해 냉동실에 미역국과 밥을 얼려놨더라. 재밌었던 건 나는 미역국과 밥을 따로 냉동해 놨는데 남편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냉동해 놨다는 거야. 내가 냉동시킨 걸 해동해 먹어봤더니 냄비에 넣고 같이 끓이면 되는데 굳이 따로 얼릴 필요가 없더래. 남편의 효율성에 감탄했지.
미용실에도 갔어. 임신 했을 땐 머리를 자르지 말고 길러서 파마하는 게 도움이 된대. 아무래도 출산 후에는 머리를 감기 힘든 날도 있고 그런 날엔 하나로 묶을 정도의 길이가 편하다고 했어.
임신 중에는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 수치가 증가해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덜 빠지다가 출산 후 호르몬 분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동안 빠지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빠지는 '산후 탈모'가 생기거든. 파마를 하면 생머리보다 풍성해 보여 덜 속상하다고 했어. 임신 5개월부터 철분제를 먹잖아. 마지막 달이라고 소홀해지기 쉬운데 마지막 달이니 더 잘 챙겨야 해. 분만 과정에서 출혈이 많으니 출산 후 3개월까지는 철분제를 먹는 게 좋아.
마지막으로 소아과도 미리 정해두자. 소아과를 고르는 기준은 평소에 병원을 고르던 기준과 조금은 달라. 일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지역별로 병원을 검색할 수 있어. 집 근처의 병원부터 찾아봐. 아기는 면역력이 약하니 수시로 아픈 데다 예방접종, 영유아검진 등 병원에 갈 일이 많거든. 병원이 집에서 멀면 부모도 힘들지만 아기도 힘들어. 그러니 일단 가까운 병원으로 후보를 추려봐. 또 항생제 처방률도 살펴봐야 해.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어. 항생제 처방률은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얼마나 처방했는지 지표화한 것인데 사실 감기는 항생제를 복용해도 빨리 낫거나 증상이 급격히 좋아지지 않잖아. 항생제는 내성이 생길 수 있으니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곳이 좋겠지.
그리고 주말이나 야간 진료를 하는 곳이면 더 좋아. 낮에는 괜찮았는데 밤에 갑자기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거든. 아기와 외출할 때는 자가용을 이용할 때가 많으니 주차가 되는지, 예약이 가능한지도 살펴봐. 아무래도 병원이다 보니 아픈 아이들이 오는데 대기 시간이 길면 아픈 아이들 사이에 같이 있어야 하잖아. 예약이 된다면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되니 아무래도 안심이지.
또 중요한 것은 의사 선생님의 친절함. 아이가 아플 때만큼 부모가 초조할 때도 없어. 왜 아픈지, 빨리 나을 방법이 있는지, 다시 아프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궁금한 것도 많아.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무뚝뚝하고 질문에도 성의 없이 대답한다면 더 초조하고 불안하거든.
2. 출산 신호. 미리 알아두기
가진통은 출산이 다가오면 점점 잦아져. 자궁이 출산을 대비해 수축 연습을 해서 허리가 아프고 아랫배가 단단해지며 약한 통증이 느껴지는 거야. 통증이 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니 임신부 입장에서는 이게 가진통인지, 진진통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가진통은 생리통이나 요통과 비슷한 느낌이고 통증도 오래 가지 않고 자세를 바꾸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간격이 불규칙해. 진진통은 아랫배와 함께 허리까지 같이 아파오고 자세를 바꿔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간격도 규칙적이지. 진진통은 20~30분 간격으로 10~20초 정도 규칙적인 통증이 찾아오다가 점점 그 간격이 좁아져. 초산은 규칙적인 진통이 10분 이내 간격으로, 경산은 15~20분 간격으로 진통이 올 때 병원에 가면 돼. 규칙적인 진통이 온다고 바로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아.
이슬이 비치기도 해. 태아를 감싸고 있는 양막이 벗겨지면서 약간의 출혈이 생기고, 자궁경관의 점액성 대하와 섞여 이슬이 되는 거야. 주로 분홍색 또는 갈색인데, 이슬이 '비친다'라고 했잖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소량이야.
보통 이슬이 비치면 곧 진통이 온다고 알고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야. 출산이 임박했다는 신호는 맞지만 이슬이 비쳐야 진통이 오는 건 아니거든. 진통 후나 출산 3일 전에 비치는 경우도 있고 일주일이 걸린 경우도 있어. 하지만 이슬이 비쳤다면 조금 더 신경 쓰는 게 좋겠지.
소변이 새는 경우도 있어. 양수는 맑고 소변은 노랗지만 색으로 구분하려면 어느 정도 모여야 해. 소변은 특유의 냄새가 나지만 양수는 냄새가 없거나 비릿한 냄새 거나 락스 냄새가 난다는 사람도 있어.
양수가 터지기도 해.'터진다'는 표현처럼 배 속에서 풍선이 터지듯 퍽 하는 느낌과 함께 미지근한 물이 다리를 타고 흐르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꺼번에 많은 양이 쏟아져. 보통 진통 중 자연스럽게 양막이 터지며 양수가 흘러나오는데 이 경우는 진통이 오기 전 양수가 터졌다고 해서 '조기파수'라고 해. 임신부 10명 중 2~3명이 경험하는 일이지.
파수 후 48시간 이상 지나면 자궁 안에 있는 태아가 세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크니 파수가 되면 곧바로 병원에 가야 해.
이 시기에는 출산 신호가 신경 쓰이는 만큼 출산 신호가 오지 않는 것도 신경 쓰이더라. 39주가 되었는데 이슬도 비치지 않고 별다른 느낌도 없어 의사 선생님께 '쪼그리고 앉아 걸레질이라도 할까요?', '계단 오르기라도 할까요?' 여쭤봤더니 '임신 42주 차 전에 낳으면 순산, 42주부터 만산이라고 하니 초조해할 필요 없고'라고 하시더라. 그러고는 '아기는 엄마가 걸레질한다고, 계단을 오르내린다고 빨리 태어나는 게 아니라 아기가 태어나고 싶을 때 태어나니 기다려달라'라고 하셨어.
3. 출산 가방에 꼭 넣어야 할 것
입원하기 위해서 건강보험증과 신분증, 산모수첩을 챙겨놔. 그리고 분만 후 입원하게 되니 병실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야지. 아기를 낳으면 계절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산모는 오한을 느껴. 환자복은 얇잖아. 그 안에 내의를 입고 수면양말을 신으면 도움이 되지. 땀이 많이 나기도 하고 피가 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두세 벌 준비하면 좋아. 분만 후 일주일 정도는 '오로'라고 하는 임신 부산물이 밖으로 흘러나오거든. 출산 후 10~14일까지는 생리처럼 나오고 4~6주까지는 노란색의 분비물처럼 나와. 속옷은 임신했을 때 입은 넉넉하고 배까지 덮어주는 팬티가 좋아. 수유용 브래지어도 같이 챙기자.
출산 후에는 샤워하기 힘들어 물티슈나 작은 수건도 필요하고, 머리를 감기 힘드니 머리끈과 기초화장품도 챙기고, 무엇보다 입술보호제를 챙겨. 진통하면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탈진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입술이 많이 건조해지거든. 개인용 세면도구도 챙겨놔. 특히 칫솔은 출산 후 잇몸이 약해져 있으니 부드러운 걸로 준비하는 게 좋아.
텀블러도 필요해. 분만 후에는 우리 몸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빠져나가며 소변의 양이 급증하거든. 소변량이 증가하니 갈증도 심해지지.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병실마다 정수기가 비치된 게 아니잖아. 텀블러가 있으면 복도를 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출산 후에는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게 좋으니 보온 기능이 있는 텀블러가 좋아.
그리고 손목보호대. 출산을 거치면 골반뿐만 아니라 온몸의 관절과 인대가 느슨해져. 그 와중에 아기를 안고 수유를 하다 보면 손목을 다치기 쉬워. 제왕절개를 할 예정이라면 복대도 챙겨. 개복수술이다 보니 수술 후 걸을 때 수술한 부위가 많이 당기며 통증이 심하거든. 복대를 하면 통증이 완화돼.
자연분만을 하면 회음부 절개를 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앉기 힘들어. 이 때 도넛처럼 구멍이 뚫린 회음부 방석이 있으면 수월하게 앉을 수 있어.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몸에서는 초유가 돌기 시작해. 아기에게 직접 수유할 수도 있지만 신생아 황달 등 질환으로 인해 혹은 엄마가 거동하기 힘들 때는 유축을 해서 신생아실에 전달하기도 하니 유축기와 모유저장팩도 준비해.
아기에게 직접 수유를 할 때는 수유쿠션이 필요한데 병원에 비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문의해 보고 없으면 챙겨두자.
출산 가방을 다 쌌으면 이제 퇴원 가방을 쌀 차례야. 퇴원 가방을 싸기 전에 병원에 문의부터 해봐. 출산 선물로 겉싸개 혹은 속싸개를 준비해 주는 곳도 있거든. 아기 퇴원 용품으로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실 거야. 배냇저고리와 손싸개, 모자 등은 미리 빨아서 깨끗하게 보관했다가 가방에 넣어두는 게 좋아.
그리고 마지막. 마음의 준비도 하자.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 품에 안겨주거든. 너무도 벅차 울음부터 터져버리지만, 아기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주자. 그 순간 생각하려면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으니 지금부터 생각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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