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움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태도, 기질, 가치 등입니다. 이들은 서로 상관 관계를 가지지만, 각각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요소입니다.
태도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거라 개인의 학습 능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더 좋은 학습 효과를 내고 부정적이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집니다.
기질이란 생물학적으로 성격이며 유전자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부모나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어떤 특정 상황에서 그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가치란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인생에서 우리의 선택과 인식 방법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알아야 될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근거를 두고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는 한 죽을 때까지 무엇을 배울지는 선택해야 합니다.
이드리스 샤는 `그저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선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공부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언제 공부하고 또 언제 공부하지 않을 것인가, 누구와 함께 공부하고 누구의 지도를 받지 않을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이 말은 공부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곳에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인 것 선택하는 데도 적용됩니다.
우선 순위를 정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켜 가야 할 가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배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능한 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혼합적인 가치 체계를 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로 남성들은 정보를 습득하거나 콘텐츠를 배우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여성들은 인간 관계 기술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지 못할 때,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을 피하려 하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측면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은 불편하고 위협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영역에서 벗어나려 하고 또 많은 여성들은 남성적인 기질이 요구되는 일들을 피하려 합니다.
완전성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남녀 양성적 특성에 마음을 열어야 하고,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 모두를 포괄하는데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총체적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기에는 우리에게 숨어 있는 재능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역할 모델로부터 배우기 다른 사람들과 어떤 인간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중 하나입니다. 역할 모델은 우리가 큰 어려움 없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모습을 잘 관찰한다면, 우리가 가고 있는 길에 놓여져 있는 예기치 못한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위험을 마주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좋든 싫든 부모가 가장 중요한 역할 모델이 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성인이 되면 우리는 역할 모델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2. 개인이 선택
삶이 복잡한 이유는 우리가 개인이면서 동시에 가족, 직장의 구성원이고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지리적 영역뿐만 아니라 심리적 영역도 있어 내 땅에 누군가가 무단으로 들어와 꽃을 꺾으면 그것은 지리적 영역을 침범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비난하게 되면 화를 내는데 이 경우는 심리적 영역을 침범한 것입니다. 또 우리의 신념 체계에 도전하게 되면 그는 이방인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떠들어대면 분노는 더욱 커집니다. 우리의 분노는 침해받았다고 인식함으로써 화를 내게 됩니다. 때문에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고 내가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고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야, `이 사람이 내 땅을 침범하긴 했지만 그건 실수한 거니까 화를 낼 필요는 없어.` 그가 내 땅에 조금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라면 화낼 가치도 없는 거야 등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라도 어떤 이득이나 이익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기부를 하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하고 종교인들은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길이라서 결정했을 뿐입니다.
훈련은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푸는 수단이며 모든 훈련은 복종의 한 형태이다.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별해 내는 훈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제 무엇에 대해 복종하고 또는 복종하지 않을 것인지를 그리고 그 복종의 대상이 우리의 자아인지, 사랑인지, 신인지 아니면 악의 힘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어린 시절에 부모 또는 그 외의 다른 보호자들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성인기에 접어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부모에게 복종을 하고 또는 복종을 하지 않을 것을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은 우상 숭배만큼이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하듯 어느 정도까지 사회의 가치에 동조할 것인지 불복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주는 것만큼 받는 것도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데 그건 빚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구속된다는 느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자라온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지는 칭찬이나 좋은 소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사랑을 줄 수 없는 것만큼이나 파괴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부드럽고 친절한 것이지만 가끔은 거친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랑은 때로 모호한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부드러움 또 때로는 엄격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만 확대시키고 자신을 위해서는 키워 나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잘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복종은 그저 참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우리의 책임이고 무엇이 우리의 책임이 아닌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에 복종을 한다면 언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언제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지도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인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변화시키려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대체로 이기적이고, 지배적이고, 사랑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결혼 생활을 해가면서 수용과 이해를 다 포함하는 그런 유형의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를 변화시키려는 욕구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화적 관습에 의한 학습 효과 때문에 사랑은 무언가 베풀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들은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어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옆에 있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무엇을 숨기거나 거짓말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3. 한계
우리는 살아가면서, 심지어 젊고 모험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한계를 경험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점점 더 큰 한계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혼자 살 것인가 아니면 결혼을 할 것인가, 계속해서 직장을 다닐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선택의 결과로 다른 가능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나이 드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으로써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상실감 때문에 어느 정도의 우울증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는 걸 반기지 않는다는 것은 서서히 상실감을 느껴 가는 노년의 고통을 거부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우리는 육체적인 민첩성, 성적인 능력, 육체적 아름다움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상실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적어지게 되고, 이런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최후로 경험하는 상실입니다. 자아는 육체가 소멸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존엄성 또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존엄성이란 전적으로 자아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 영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자신의 대한 통제력이 상실되면 영혼은 그 상실의 과정을 흔쾌히 맞이합니다. 죽음은 절대적 허무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내세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더라도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어 죽음의 공허함은 두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