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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 제 4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by 수호천사1009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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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시대탐구 대기획 5부작인 자본주의에서 4부 편입니다. 돈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고 요즘 세상은 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돈이 생겨났고 역사와 함께 돈은 함께 흘러가는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자 두 분을 만나봅니다. 그럼 이제 시작할게요~^^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2008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 그때는 금방 진정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지난 250년 동안 끊임없이 위기의 파도를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때마다 경제학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위기의 파도를 헤쳐 나아갈 나침반이 돼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까요?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세상을 구할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로버트- 케인스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조나단 -어떤 저항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영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럴 때 마르크스를 찾죠.

벤 파인- 경제위기가 닥칠 때 급진적 사상가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죠.

에이먼- 아담 스미스는 경전 같은 존재에요.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어요. 모두에게 해답을 주죠.

그럼 먼저 경제학의 창시작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부터 만나러 가볼까요.

1759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의 이 대학에 한 유명한 도덕철학교수가 있었습니다.

 

이상한 걸음걸이와 말투로도 유명했지만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었죠. 그 시기 스미스는 사람들의 본성과 행동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모아서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내죠.

그의 책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에이먼-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마음속에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관찰자가 이기심을 잘 조절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해 준다는 거죠. 이러한 주장은 폭 넓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고 그 유명세 덕분에 아주 특별한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찰스 공작이 그의 양아들 헨리 스커트의 대리 여행에 동행하며 가정교사를 봐달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 귀족가문에서 유행하던 자녀 교육 방법 중 하나였죠. 스미스는 수락했습니다.

여행은 3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는 파리, 뚜루즈, 제네바 등을 다니면서 당시의 쟁쟁한 사상가들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미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대륙여행이 큰 영향을 끼쳤어요. 공작아들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견문록을 쓰는데 그게 국부론의 시작인 셈이죠. 18세기는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막 시작하는 시점이었죠.

또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돼서 생산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물건을 팔 수 있는 더 넓은 시장이 필요해졌고 자유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그 시기에는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의 축적으로 보는 중상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죠.

에어먼- 아담 스미스를 가장 화나게 했던 건 중상주의였어요. 당시 한 나라의 부란 국가의 금고에 얼마나 많은 금, 은이 쌓여 있는지가 결정했어요. 그게 그 나라의 부의 기준이었어요. 그러던 중 스미스는 프랑스 여행에서 만난 케네로부터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케네는 원래 루이 15세의 주취의였습니다. 또 경제표를 만들어낸 경제학자로도 유명했죠. 의사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를 하나의 육체로 봤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식량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리고 사회는 세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폐는 그 세 계급을 돌면서 생산물을 공급한다는 것이죠. 마치 혈액처럼. 또한 그는 토지만이 부의 원천이라는 중농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케네의 사상은 스미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국가의 부는 중상주의에서 주장하듯 금과 은의 축적이 아니라는 거죠. 스미스는 국가의 부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국부를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스미스는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국부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전에 글래스고에서 본 것도 소중한 자료가 됐죠.

 

글래스고가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해지기 시작할 때였어요. 담배 수출입의 중심지였어요. 항구가 있는 글래스고는 경기가 좋았죠. 경제적인 부흥이 시작되는 시기였어요.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가 매일 생성되는 것을 보면서 자유시장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린 여전히 마음은 한창인데 죽을 때가 다가오는 거 같아. 나 아직 괜찮아 보이지 않아?

스미스 -데이비드, 나도 이제 신경통이 와서 지팡이를 사용해요. 하지만 나도 괜찮죠? 우리가 빵이나 술,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은 가게주인들의 이웃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에요. 각자의 이기심 때문이죠.

데이비드 - 아담이 예전에 그런 원고를 보여주었었지.

스미스 - 그 이기심이 모여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거예요

데이비드 -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경제를 이끄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잖아.

스미스 - 오늘 밤새 부업, 노동, 국부 등을 쉴 새 없이 떠들면서 데이비드가 혼이 빠진 사이 카드게임에서 돈을 딸 겁니다.

 

이 둘은 평생 친구였어요

그는 많은 사람들과 사귀지는 않았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매주 저녁을 함께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죠.

핀 공장에 가 봤더니 혼자서핀을 만들면 많아야 하루에 20개밖에 못 만들어요. 그러나 18단계의 제조공정으로 10명이 작업하면 하루에 (200개가 아닌) 4만 8천 개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1776년 3월 드디어 성서일에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불리는 국부론이 탄생됐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것은 바로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어디서든 노동이 이루어지면 부가 생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서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는 국부론을 통해 당시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중상주의의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미스를 잘 못 이해하고 있어요.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거대정부를 반대하고,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했지요. 그러니 아담 스미스는 `돈 많은 부자들의 편' 이라고 오해했죠.

크리스토퍼 -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이고 경제도 그 도덕체계의 한 부분인 거죠. 국부론은 인간 행동 규범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둘 중에 한 권만 읽어서는 알 수 없어요. 도덕감정론의 이론이 국부론에서 다시 등장하거든요. 빈민에 대해 연민을 느끼죠.

에이먼- 아담 스미스는 대중을 돕는 최선의 길은 자유 시장 경제라고 주장했어요.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 그래서 이기적인 행동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1790년 7월 17일 그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다 쓰지 못한 글은 출간할 수 없는 원고들이라 태워달라고 부탁합니다.

스미스가 지금 세계를 보면 아주 놀랄 거고 미국과 영국 등에 대해서는 좀 실망할 것 같아요.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요. 아담 스미스의 유명한 문구가 있어요

`국민이 대부분이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체제는 19세기를 거치며 점차 자본주의의 모습을 갖추어 왔습니다. 하지만 자본가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고통은 점점 더 커져만 갔죠.

 

이제 반대로 다른 분을 만나러 가봅시다.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을 던진 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부품처럼 돼버린 노동자들의 삶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고 싶어 했습니다.

사실 청년시절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 푹~빠져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 인간도 자연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철학이죠.

절대정신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장 시절

마르크스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신론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래서 생계를 꾸리려고 언론계를 눈을 돌렸죠. 그 때가 마르크스가 정치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기자로서 진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자유의 도시 파리로 갑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와 엥겔스를 만나게 됩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정말 훌륭한 사상가라고 생각했어요. 엥겔스는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후원자, 공산주의의 후원자였어요. 그는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 원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돈을 보냈죠.

 

맨체스터 방직공장에는 심지어 이만한 어린 애들도 매일 12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 학교는 꿈도 꿀 수 없지.

 

엥겔스보다 마르크스는 최고의 사상가입니다. 마르크스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생각에 갇혀 비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의 얘기에 흥미를 두지 않았어요. 반면 엥겔스는 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즐거운 사람이었어요.

또한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조직과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점차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바뀌게 됩니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계급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혁명을 준비합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1845년 2월 국적을 포기하고 혁명을 원했습니다.

벤 파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유명한 `공산당선언'을 발표했어요.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그 개선방향을 찾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변화 가능한 것들을 연구했어요. 위기도 있었고 탄압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선언이 출판된 1848년 유럽은 혁명의 폭풍이 휘몰아 칠 때였습니다.

마르크스는 파리 등에 가서 혁명에 참가했죠.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는 붉은 박사라는 악명과 인류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는 영성을 동시에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따라 추방령이 내려졌습니다.

1848년 독일 쾰른으로 가 `신라인 신문' 발행했지만 폐간합니다. 그리고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죠.

1849년 영국 런던으로 망명.

1855년 4월. 그의 아들 에드가가가 폐렴으로 세상을 뜨게 되죠. 궁핍한 생활은 이후 5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르크스는 6명의 아이 중에 3명의 아이를 잃게 됩니다. 이 후 마르크스 가족은 유산과 엥겔스의 기부금 덕분에 작은 연립주택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생활이 안정되자 드디어 자본론을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낮엔 대영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주말엔 소풍을 가거나 다른 독일 이민자들과 교류했어요. 사교적인 사람이었죠. 그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 모순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의 국보론을 수백 번 읽었죠.

1867년 그가 15년 이상이상 쓴 자본론이 출간됩니다.

자본론에서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상품입니다.

상품은 인간이 사용하고 생산하는 모든 물건을 말하죠. 쓸모가 있는지를 따지는 사용가치, 교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교환가치 둘 다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죠.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해 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6시간 동안 6컬레를 만든다면 신발의 가치는 1 노동시간이라는 것이지요.

벤 파인 - 자본론 1권은 어떻게 자본이 이윤을 남기는가에 대한 것이에요.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원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빵 한 개를 만드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드는지 계산해 보겠습니다.

기계는 빵만개를 만들면 수명이 다합니다.

빵 한 개를 만드는 데는 3 노동시간이 듭니다. 빵 한 개는 3천 원 되는 것입니다.

밀가루나 기계는 시간당 8,000원을 주는데 자본가는 노동자한테 일당을 3,000원밖에 안 줍니다.

그럼 나머지 5 노동시간 5,000원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자본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남은 가치를 잉여가치다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노동자는 싫다고 말 못 할까요? 자본가가 그만둬라 하면 그만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에게 더 오래 일하게 합니다. 물론 일당은 절대 더 주지 않죠.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자본가는 더 많은 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걸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말했습니다.

필요노동시간은 줄고 잉여노동시간이 노동자의 임금은 날로 싸지고 자본가는 그만큼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 칼 마르크스는 최초로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했어요. 착취 현상이 일어날 거로 생각했어요.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면 실업이 증가. 그럼 일 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렇게 되면 상품을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으니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될 거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거다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경고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등장할 것을 예견했습니다.

 

조나단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한 과정으로 봤습니다. 봉건제 이후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일고 주장했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사라지고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구조를 설명해 냈습니다.

1883년 3월 13일 마르크스는 책장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사후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유품을 모아서 1885년 자본론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을 출간합니다. 1894년 자본론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발간했습니다.

또한 한 세기가 흐른 다음에 마르크스의 사상은 레닌을 비롯해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이라도 그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요?

 

칼 마르크스 그는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도와서 공산주의 세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가였습니다. 철학자, 경제학자, 사상가였습니다. 마르크스가 철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사실입니다. 마르크스가 붕괴할 거라고 했던 자본주의 국가들은 비록 위기를 겪으며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아직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들은 독재와 빈곤에 허덕이다 20세기말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죠. 경쟁에서 승리하자 자본주의 국가들은 마르크스와 그의 책들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본론이 세상에 나온 지 140년이 지났습니다.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가고 오히려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졌죠. 그렇다면 아직도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없는 걸까요? 사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와 우리에게 절박한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닐까요? 물론 자본론의 가치는 마르크스의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해서도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연민과 열정으로 자본론을 쓴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자본론의 가치인 것입니다.

 

조나단 - 자본주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신문 사설에 종종 `결국은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말이 실립니다.

제프리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주장합니다. 생산이 쉬워진 신용화폐로 미래에 투자합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예요. 동시에 빛을 양산하고 디폴트를 일으키고 위기를 가져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사상의 시작점이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을까? 를 고민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를 오해했습니다. 공산주의도 칼 마르크스를 오해했습니다. 그들에겐 오직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그렸던 세상은 끝없는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소수지배의 독재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 이제 우리 안에 위대한 관찰자가 세상을 구해주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영상을 보고 나니 아담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나 두 분 다 처음 마음은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그런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한거였어요. 그래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이런 사상을 만들었던 건데..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변질이 돼서 나보다 약한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또 소수의 사람만이 부를 누리게 되는.. 그런 세상이 돼버린 거 같아요. 그래도 많은 시간이 지났고 공산주의는 무너졌고 자본주의가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는데.. 저는 이런 사상은 모르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먹고 잘 살고 걱정 없고 아프지 않고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멋지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럼 오늘 하루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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