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 된 내가 낯설게 느껴지기 전에
임신 중기에 접어들어 그런가. 아이도 안정적으로 잘 자라고 있고 나도 임신에 적응되면서 생각이 많아졌어. 어느 날 먼저 부모가 된 선배를 만났는데 갑자기 궁금해졌어. 선배는 다시 임신 기간으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라고 물으니 선배가 '더 신나게 놀 거야!'라고 했어. 이 부분은 저도 궁금해서 먼저 엄마가 된 친구한테 물어보니 제 친구는 여행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를 돌봐야 하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아이와 무얼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가 즐거워할까?' 고민하니 내 즐거움을 챙길 여유가 없다고 해요.
그리곤 잊고 있었다가 첫째가 백일 쯤 이 말이 떠올랐다고 해요. 스스로에게 '만약 다시 임신 기간으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질문을 해봤는데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이 떠오르더라. '부모가 되어서도 나를 잃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 볼걸'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 우리 엄마들은 '00 엄마'라고 불리죠. 우리 엄마도 그랬고, 작가님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랬다고 해요. 태어나 줄곧 하루에도 수십 번 불리던 내 이름은 사라지고 '00 엄마'로만 불리더라. 심지어 시어머니는 나를 부를 때 '00~'하고 아이 이름으로 부르셨어.
처음에는 싫지 않았지. 오히려 으쓱했어. 아이가 나 같고, 내가 아이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앞에 서니 기분이 묘한 거야. 부스스한 얼굴에 머리는 질끈 동여매고 후줄근한 면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거든. 아이를 낳고는 늘 이 모습이었으니 익숙했고 솔직히 말하면 점점 거울 속 모습이 더 '나'로 고정될 것 같은 느낌에 겁도 나더라. 나는 사라지고 '00 엄마'만 남은 것 같았거든.
부모가 되면 많은 부분이 변하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런 변화까지 짐작한 건 아니었어.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싶으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어. 아이를 낳은 뒤 친정엄마는 '네 아이가 자라 부모가 되었을 때 너처럼 산다고 생각해 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일 거야'라고 하셨거든.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부모가 되니 내 모습이 낯설어지네'가 아닌 '부모가 되는 더 근사해졌네'라고 느끼면 좋겠더라.
그동안은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잘 돌볼까에 집중했어. 그럴 수밖에 없었지. 임신도 처음, 출산도 처음, 육아도 처음이니 적응하고 배울 일투성이었거든. 게다가 책임감은 또 어찌나 막중했는지 몰라. 경험은 없는데 책임감은 크니 하루하루 아이와 같이 살아남는 게 미션처럼 느껴졌지. 거기에 잘 해내고 싶은 마음마저 겹치니..
그런데 어느 날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보이더라. '눈부처'라고 하잖아. 아이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어. 그 모습은 다름 아닌 아이가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었지. 그 순간 나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인 동시에 아이가 바라보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시야가 확 넓어졌어.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역할을 넘어,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부모의 존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
2. 나를 지키며 부모가 되는 법
친정 부모님을 떠올렸어. 작가님의 부모들처럼 저희 부모님도 부지런했어요. 어른이 된 후 아빠가 '너희들은 부모 노릇 너무 열심히 하면서 살지 말아라'라고 하셨고 엄마는 부모 노릇에만 심취하지 말라고. 부모가 된 너를 지켜가며 부모 노릇을 하라고 해요. 돌아보니 그게 건강한 부모 같다.
어느 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는데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나 물어보니 '정신이 없으니까 너를 지켜야지.' 네가 아프면 아이는 어떻게 돌보냐며 아이 돌보는 게 중요한 만큼 아이를 돌보는 사람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 특히 마음 건강을 챙겨'라고 하셨어요.
일단 '내 시간'을 가지라고 했는데 '00가 조금 더 크면..' 하고 말꼬리를 흐렸더니 '조금 더 크면이 언제인데?'라고 되물으셨지.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 더 크면'이라는 말만큼 무서운 것도 없어. 필요하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엄마 말씀이 맞더라. 내 시간을 '만들기'로 했어. 현실적으로 가능한 후보는 일단 남편의 퇴근 후. 퇴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은 뒤 남편이 아이를 목욕시키는 30분 동안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어.
날씨가 좋을 때는 가볍게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에너지를 충전해. 꼭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어.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거든. 아이 생각을 멈추고 '나'로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면 충분했어. 주말에는 두세 시간 남편이 아이를 전담하고 '내 시간'을 가졌지. 반대로 내가 아이를 전담하고 남편이 자기 시간을 갖기도 했어.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은 뒤에야 내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렇게 바꿔나갔지만, 임신 중에 미리 방법을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싶어. 조금 더 고민한 뒤에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께 도움을 받거나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해 이용하기도 했어. 내 시간을 챙긴 만큼 부모 노릇을 더 잘하게 되더라.
3.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내 시간을 가지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됐고, 그 에너지를 아이와 나눴어. 결국 부모에게 에너지가 있어야 아이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거더라. 아이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주고 싶다면 내 에너지를 확보하는 게 우선인 거지. 동시에 어떤 에너지를 주고 있느냐고 살펴봐. 아이는 어른과 달라서 부모가 주는 에너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거든. 어른인 내가 에너지를 걸러서 줘야 하는 거지.
'아이 앞에서는 조심하자' 다짐했지만 부족했어. '아이 앞에서는'이라는 단어는 통하지 않아. 아이와 늘 함께니까. 그렇다면 늘 조심하면 될까? 그건 불가능해. 부모는 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인 걸. 결국 답은 하나야. 아이에게 주고 싶은 에너지로 나를 채우는 것. 나에게 이미 가득한 에너지라면 그대로 나눠주면 되고, 나에게 없는 에너지라면 내가 먼저 그 에너지를 채우는 거지.
아이 앞에 꽃길만 펼쳐지길 바라지만, 부모의 바람일 뿐 현실은 꽃길과 가시밭길의 반복이니까. 똑같은 실패를 겪어도 누군가는 실망하고 주저앉지만 누군가는 배울 점을 찾고 개선안을 만들어내잖아. 실제로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어려운 일이 닥쳐도 잠깐 우울해하다가 '이것도 경험이지' 하며 툭 털고 일어나. 그 모습을 보면서 '친구의 부모님은 친구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궁금했어. 나중에 그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 뵈었는데 그냥 친구랑 똑같은 분들이었어. 특별한 비법이나 양육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구는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라며 세상을 해석하는 법을 배운 거지.
그 뒤로는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면 좋을지 생각하고 내가 그 모습이면 아이는 나를 보고 배울 거구 내가 그 모습과 다르다면 나부터 바꿔보려고 해.
예를 들면 책. 책을 즐기는 아이로 키우고 싶거든. 그래서 임신하고 남편과 서점에 가 그림책을 보면서 두 권을 샀지. 서재에 책을 꽂았는데 정작 나와 남편은 책을 얼마나 읽나 헤아려봤더니 일 년에 열 권이 넘지 않는 거야. 그래서 TV부터 치웠어. 책 읽을 시간이 없는 핑계로 책과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TV는 보고 있었거든. TV를 없앤 자리에 책장을 두고 아이 책, 우리 책 같이 꽂아뒀지. 눈앞에 책이 수시로 보이니 하루 한두 장이라도 읽게 되더라. 거실 환경을 바꾼 뒤로는 남편도 나도 일주일에 한 권은 책을 읽고 있어. 두 아이들도 책과 친구처럼 지내고.
저는 이 부분을 보고 저도 저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제 짝궁과 아이들도 책을 보며 배우고 친구처럼 지내기를 바라거든요.
부모가 되고, 내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느껴지니 솔직히 두려워. 부족하고, 나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많은데 그런 나를 아이가 보고 배우니까. 괜히 움츠러들더라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가 노력하는 자세니까,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다 싶더라.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고 완벽한 부모가 어디 있겠어. 누구나 부족하다는 걸 알고,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거니까 아이에게도 이제는 이렇게 말해.
'엄마는 이 부분을 더 잘하고 싶어. 그래서 노력하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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