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의 실패가 아니다. 상상력의 실패다.
언젠가 스탠퍼드 대학교 스콧 세이건 Scott Sagan 교수는 경제나 투자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벽에 걸어두어야 할 이야기를 했다.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
역사는 대체로 깜짝 놀랄 사건들을 연구한다. 그런데 투자자나 경제학자들은 역사를 신성불가침의 가이드처럼 사용한다. 아이러니가 보이는가? 뭐가 문제인지 알겠는가?
경제나 투자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똑똑한 행동이다.
역사는 기대치를 조정하게 도와주며, 사람들이 어디서 잘 틀리는지 연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어떤 것이 효과가 있을지 개략적인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역사는 미래의 지도가 될 수 없다.
많은 투자자들이 빠지는 이 함정을 나는 '역사가의 예언 오류'라고 부른다. 혁신과 변화가 목숨과도 같은 분야에서 과거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해 미래 신호를 읽으려고 할 때 생기는 오류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을 탓할 수는 없다. 만약 투자를 엄밀한 과학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는 미래에 대한 완벽한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지질학자들은 수십억 년의 역사적 데이터를 통해 지구가 어떤 양태를 보이는지 모형을 세울 수 있다. 기상학자도 마찬가지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2020년에도 인간의 신장은 천 년 전인 1020년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투자는 엄밀한 과학이 아니다. 투자란 수많은 사람이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행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불완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러니 똑똑한 사람들도 예민하고 탐욕스러워지며 편집증을 갖게 된다.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Richard Feynman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자에 감정이 있었다면 물리학이 얼마나 더 어려웠을지 상상해 보라.” 흠, 투자자들은 감정이 있다. 많은 투자자들이 감정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과거 행동에 기초해서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경제학은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뀐다는 사실을 초석으로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뭐가 되었든 무한정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투자가 빌 보너 Bill Bonner는 '미스 터 마켓 Mr. Market'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작동하는 자본주의'라는 티셔츠를 입고, 한 손에 커다란 해머를 들고 서 있다." 오래도록 그대로 있는 것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 역사가들을 예언가 취급해서는 안 된다.
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동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선호다. 이런 요소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문화와 세대에 따라 변한다. 항상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때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는 정신적인 속임수가 있다. 겪어본 사람, 이미 해본 사람을 지나치게 우러러보는 것이다. 특정한 사건을 겪어보았다고 해서 반드시 다음번에 일어날 일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경험을 통해 예측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감이 넘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투자가 마이클 배트닉이 이 점을 잘 설명한 적이 있다. 요즘의 투자자들이 금리 상승을 겪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금리가 크게 상승한 것은 거의 40년 전이다) 이에 대비된 투자자가 거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배트닉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경험하거나 심지어 연구한다고 해도, 미래에 금리가 상승할 때 벌어질 일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금리가 급등하면 마지막 급등과 비슷할까, 아니면 그전 급등과 비슷할까? 자산의 종류가 달라도 비슷하게 움직일까, 똑같이 움직일까, 정반대로 움직일까?
투자를 하면서 1987년, 2000년, 2008년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시장을 경험한 셈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경험들이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전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을까?
투자의 역사에 지나치게 의존해 다음 일을 생각할 경우 두 가지 위험이 발생한다.
과거에 의존하면 미래를 바꾸어놓을 이례적인 사건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보통의 경우에서 크게 벗어난 사건들이다. 기록을 낀 사건 말이다. 그런 것들이 경제와 주식시장을 크게 바꾼다.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닷컴 버블, 9·11 테러, 2000년대 중반 주택시장 붕괴 등. 이런 몇 안 되는 이례적 사건들은 뒤이어 일어나는, 그와 무관한 수많은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
19세기와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은 150억 명이다. 그런데 그 중에 단 일곱 명이 태어나지 않았을 경우 오늘날 세계 경제, 나아가 세상 전체가 얼마나 달랐을지 상상해 보라.
•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
• 마오쩌둥 Mao Zedong
•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제1차 세계대전의 계기가 된 사라예보 사건을 일으킨 인물-옮긴이)
• 토머스 에디슨 Thomas Edison
• 빌 게이츠
•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사실 이 목록이 가장 의미 있는 인물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 일곱 명이 자신의 족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 세상은 국경에서부터 기술, 사회 규범까지 거의 모든 것이 달라 졌을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지난 세기에 0,00000000004 퍼센트의 사람들이 세상의 방향을 절반 이상 결정했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혁신, 사건도 마찬가지다. 20세기에 다음의 것들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 대공황
• 제2차 세계대전
·맨해튼 프로젝트(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원자폭탄 개발 프 로젝트-옮긴이)
• 백신
• 항생제
• 아르파넷ARPANET (인터넷의 전신이 된, 미국 국방부에서 만든 컴퓨터 네트워크-옮긴이)
·9·11 테러
• 소비에트 연방 몰락
20세기에 있었던 프로젝트와 사건이 얼마나 많을까? 수십억 개? 수조 개? 누가 알까. 하지만 이 여덟 가지 사건만 봐도 다른 것에 비해 세상의 질서를 수십, 수백 배 바꿔놓았다. 꼬리 사건을 과소평가하기 쉬운 이유는 사건들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 과소평가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한 예로 9·11 테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금리를 내리게 만들었고, 주택시장의 거품을 촉진했다. 이는 다시 금융위기로 이어졌고 고용시장 악화를 불러왔다. 그러자 수천만 명이 대학 교육을 받겠다고 나섰고, 1조 6,000억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10.8퍼센트에 이르게 됐다. 9·11 테러 당시 19명의 납치범들과 지금의 학자금 대출 문제가 직관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몇 이례적인 꼬리 사건이 좌우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처럼 세계 경제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은 예측 불가능했던 몇 안 되는 과거 사건들과 거의 연결되어 있다.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예측 모형이 잘못됐거나 우리의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나기 9개
월 전, 그들의 부모가 싸웠을 확률은 그들이 아이를 만들었을 확률과 동일하다. 의학자 조너스 소크 Jonas Salk가 백신 찾기 연구를 중도에 포기했다면 빌 게이츠는 소아마비로 죽었을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렵다. 학자금 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던 이유는, 9월 11일에 공항 보안요원 중 한 명이 납치범의 칼을 압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문제는 우리가 미래의 투자수익률에 관해 생각할 때 종종 대 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 등을 가이드로 사용해 최악의 시나리오 같은 것을 짠다는 점이다. 기록을 갈아치운 그런 사건들은 전례가 없이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니 미래의 최악 혹은 최 고의 사건이 과거의 최악 혹은 최고의 사건과 같은 수준일 거라 가정하는 예보관은 역사를 따르지 않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가정은 미래에 유례없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가정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심 탈레브의 저서 《행운에 속지 마라 Fooled By Randomness》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파라오 시절 이집트에서 학자들은 나일강의 최고 수위선을 추적해 이를 근거로 향후에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늠했다. 2011년 쓰나미 때 참사를 빚은 후쿠시마 원자로 사태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이 원자로는 과거에 있었던 역사상 최악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지어졌다. 건축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경우는 상상하지 않았다. 과거 최악의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깜짝 놀랄 일이었고 그 전까지는 유례가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분석의 실패가 아니다. 상상력의 실패다. 미래의 모습이 과거와 전혀 딴판일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다. 금융시장 예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 높이 사는 기술은 아니지만 말이다.
2017년 나는 뉴욕의 어느 만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은 우리의 예측이 틀렸을 때 투자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조차 "다시는 이런 실수를 안 해야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예측하지 못해서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알아야 할 건, 세상이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놀랐을 때 배워야 할 교 훈은 바로 이겁니다. '세상에는 놀랄 일이 생긴다.
'세상에는 놀랄 일이 생긴다. 과거에 있었던 놀라운 일들을 미래의 가이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래에 일어날 가장 중요한 경제적 사건(상황을 가장 많이 바뀌 놓을 사건)에 대해 과거는 가이드를 거의 주지 않거나 전혀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유례가 없는 사건이 될 것이다. 유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을 테고, 해당 사건이 그토록 큰 영향을 끼치는 데는 이런 이유가 한몫을 할 것이다. 이는 경기침체나 전쟁처럼 무서운 사건은 물론, 혁신처럼 좋은 사건에도 해당한다.
나는 이 예측이 맞으리라 자신한다. 놀랄 만한 일들이 상황을 가장 많이 바꿔놓았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역사의 주요 지점마다 유일하게 정확했던 예측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경제나 주식시장의 미래에 대해 잘못된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에서 중요한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 것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미국에 퇴직연금 제도가 생긴 지 42년이 됐다. 개인연금 제도는 1990년대에 만들어졌다. 그러니 오늘날 은퇴에 대비해 미국인들이 돈을 어떻게 모으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개인금융에 대한 조언은 불과 한 세대전 과도 직접적인 비교가 힘들게 됐다. 새로운 옵션들이 생겼고, 상황이 변했다.
아니면 벤처캐피털을 살펴보자. 25년 전만 해도 벤처캐피털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규모가 큰 벤처캐피털 펀드 하나가 한 세대 전 해당 업계 전체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 필 나이트 Phil Knighs는 회고록에서 사업 초창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벤처캐피털 같은 것은 없었다. 가슴 부푼 젊은 사업가가 기댈 곳은 거의 없었다. 있다 해도 상상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리스크 회피적인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었다. 은행가들 말이다.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과 관련한 불과 몇십 년 전의 데이터도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투자 사이클, 스타트업의 실패율과 관련해 우리가 아는 사항들은 탄탄한 역사적 기초가 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 기업들이 자금을 조 달하는 방법은 그만큼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S&P500은 1976년까지 금융 기업을 포함하지 않았다. 지금은 금융 분야가 지수의 16퍼센트를 구성한다. 50년 전에 기술주들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기술주가 지수의 5분의 1 이상을 구성한다. 회계 규칙도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다. 공시제도며 감사제도, 시장 유동성도 마찬가지다. 상황은 변했다. 미국에서 경기침체의 간격도 지난 150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침체기의 평균 간격은 1800년대 말 2년에서 20세기 초에는 5년으로, 지난 50년간은 8년으로 넓어졌다.
이 책을 쓰고 있는 현재, 우리는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침체기가 시작된 2007년 12월 이후 12년 만이다. 남북전쟁 이후 가장 긴 간격이다. 경기침체의 빈도가 왜 줄었는가와 관련해서는 수많은 이론이 있다. 그중 하나는 연방정부가 경기 순환을 좀 더 잘 관리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경기 순환의 길이를 좀 더 늘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은 지난 50년을 지배한 서비스업에 비해 중 공업이 호황과 불황의 과잉생산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관적 관점 중 하나는 경기침체의 횟수는 줄었어도, 강도가 이전보다 더 세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유발했 는지는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분명 변했다는 사실이다.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런 역사적 변화가 어떻게 고려되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 이론가라 믿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그레이엄의 고전 《현명한 투자자 The Intelligent Investor)는 단순한 이론 이상이다. 이 책에는 투자자들이 똑똑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사용할 만한 공식이 담겨 있었고, 이는 우리에게 실용적인 방향을 알려준다.
내가 그레이엄의 책을 읽은 것은 투자에 관해 처음 배우던 10대 때였다. 나는 이 책의 공식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말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지시 사항을 하나씩 따라가면 되었다. 아주 쉬워 보였다.
그런데 공식들 중 몇 가지를 적용해보려고 하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공식이 별로 없다.' 그레이엄은 순운영자산(쉽게 말해 은행에 있는 현금에서 모든 빚을 뺀 것) 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라고 한다. 듣기에는 훌륭하다. 그러나 이렇게 싼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은 이제는 거의 없다. 회계 부정으로 고발된 싸구려 주식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그레이엄의 기준 중에는 보수적인 투자자라면 장부 가치보다 1.5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은 피하라는 사항도 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이 규칙에 따랐다면 보험과 은행주 외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투자서 중 하나다. 그러나 그레이엄이 발표한 공식들을 실천해서 잘살게 된 투자 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에는 지혜가 가득하다. 아마도 지금까지 출판된 그 어떤 투자서보다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 그러나 실천 지침서로서의 가치는 의문스럽다.
어떻게 된 걸까? 그레이엄이 듣기에만 좋을 뿐 효과 없는 조언이나 하는 쇼맨십에 능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그레이엄은 본인 스스로도 크게 성공한 투자자였다.
그레이엄은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남다른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고수해 온 투자 개념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해당 이론을 따르게 되어 그 이론 이 잠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면 더는 얽매이지 않았다. 나중에 나온 그레이엄 책의 개정판에 주석을 달기도 했던 제이슨 츠바이크는 이렇게 썼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가정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다시 테스트하며 어느 것이 효과가 있는지 찾으려 했다. 어제 효과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 효과 있는 것을 찾았다. <현명한 투자자>의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그레이엄은 이전에 제안했던 공식을 버리고 새로운 공식으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사실상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공식들은 더 이상 효과가 없거나 이전만큼 효과가 없습니다. 이것들이 지금 더 효과 있어 보이는 공식입니다.
그레이엄에게 흔히 제기되는 비판 중 하나는 1972년판에 실린 공식들이 이제 모두 구닥다리라는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해 할당한 반응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당연하죠! 그 공식들은 그가 1965년판에 실린 공식들을 대체하려고 쓴 것들이니까요. 1965년판의 공식들은 1954년판의 공식들을 대체한 것이고, 1954년 판의 공식들은 1949년판의 공식들을 대체한 것이고, 1949년판 의 공식들은 그가 1934년에 내놓은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의 최초 공식들을 강화하려고 쓴 것이니까요."
그레이엄은 1976년에 죽었다. 1934년부터 1972년 사이에 그의 공식들이 다섯 차례 폐기되거나 업데이트 되었다면, 2020년에는 얼마나 유효할 거라 생각하는가? 2050년에는?
죽기 직전에 그레이엄은 개별 주식에 대한 상세한 분석(그는 이것으로 유명해졌다) 전략을 여전히 선호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아닙니다. 더 이상 우월한 가치 기회를 찾기 위해 힘든 증권 분석 기법들을 사용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우리 책이 처음 출판되었던 40년 전이었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상황이 많이 변했으니까요."
뭐가 바뀌었을까? 기회가 많이 알려지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기술 덕분에 정보 접근성이 높아졌다. 공업 경제에서 기술 부 문으로 산업이 이동했고 경기 순환과 자본 사용 방법이 달라졌다. 상황은 변했다.
투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뒤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지금 세상에 더는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수많은 투자자와 경제학자들이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의 데이터가 자신의 예측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경제는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최고의 가이드는 오히려 최신 이력인 경우가 많다. 최근의 역사에는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여건들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 업계에서 흔히 누군가를 조롱할 때 "이번에는 다를 테지."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다가오는 미래가 과거와는 전혀 다를 거라 예상하는 사람에게 반박하고 싶을 때 "아, 그러니까 너는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하는구나?"라고 말하고는 대화를 끝내버리는 식이다. 이 표현은 투자자 존 템플턴던 John Templeton의 시각에서 유래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에서 제일 위험 한 두 마디는 '이번에는 달라.'이다."
그러나 템플턴 역시 적어도 20퍼센트의 경우에는 미래가 과거와 다르다고 인정했다. 세상은 변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그 변화들이다. 그래서 마이클 배트닉은 말했다. "투자에서 제일 위험한 일곱 마디는 '투자에서 제일 위험한 두 마디는 '이번에는 달라'이다.'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돈과 투자에 대해 생각할 때 지난 역사를 무시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대신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 이 있다. 일반적인 것, 즉 사람들이 탐욕이나 공포와 맺고 있는 관계, 스트레스를 받을 때 행동하는 방식,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모습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향이 있다. 돈의 역사를 탐구할 때는 바로 이런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반해 특정한 트렌드나 업계, 부문, 시장의 인과관계,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뭘 해야 하는지 등등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바뀐다. 그러니 역사가들은 예언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까?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가치투자의 아버지, 기업 분석의 창시자 워런 버핏의 스승이자 세기의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
그는 자신의 이론과 공식을 수차례 보완하며 '미래의 예측 불허함'에 찬동했다.
누가 예상을 하고, 예측을 하고, 미래를 점치는가.
확실한 건, 세상에는 예측불허한 일이 생긴다는 그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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