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없으면 불운이 먼지는 대로 무엇이든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앞에서 예고한 대로 이 장에서는 당신이 저축을 하게끔 내가 설득을 해보려 한다.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과제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저축을 하라고 설득까지 해야 하는가? 해야 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설득이 필요하다.
일정 수준의 소득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세 부류로 갈린다. 저축을 하는 사람, 자신이 저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저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번 장은 뒤의 두 부류를 위한 내용이다.
부를 쌓는 것은 소득, 투자수익률과 거의 관계가 없다. 저축률과 관계가 깊다.
부가 소득이나 투자수익률과 거의 관계가 없다니,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개념이다. 효율성의 힘에 대해 간단히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에는 세상에 석유가 동이 날 것처럼 보였다. 계산은 간단했다. 당시 세계 경제는 많은 양의 석유를 써야 했다. 또한 경제는 계속 성장 추세에 있었다. 우리가 채굴하는 석유의 양이 따라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석유는 동나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석유를 더 많이 찾아내고 채굴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석유 파동을 극복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전보다 더 에너지 효율이 좋은 자동차와 공장, 주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1950년대에 비해 GDP 1달러당 60퍼센트나 적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도로를 다니는 모든 자동차의 평균 연비가 1975년에 비해 두 배가 됐다. 1989년 포드의 세단 토러스 Taurus의 평균 연비는 갤런당 18.0마일이었다. 2019년 쉐보레의 말도 안 되게 큰 SUV인 서브어반 suburban의 평균 연비는 갤런당 18.1마일이다.
전 세계가 에너지 자산을 키운 방법은 가진 에너지를 늘린 것이 아니라 필요 에너지를 줄인 것이었다. 1975년 이후 미국의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량은 65퍼센트가 늘었지만, 에너지 관리 및 효율성 증대를 통해 그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두 배가 됐다. 그러니 무엇이 더 중요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이 대체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불확실성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이는 딱 맞는 지질 상태와 지형, 기후, 지정학 등이 갖춰져야 하는 복잡한 문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대체로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더 가벼운 자동차를 사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이며, 효율성이 개선될 확률이 100퍼센트다.
돈 문제도 마찬가지다. 투자 수익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투자 전략이 효과가 있을지, 얼마나 오랫동안 효과가 있을지, 시장이 그에 협조해 줄지는 늘 미지수다. 결과는 불확실성 위에 놓여 있다.
개인의 저축과 검소함(금융에서의 관리 및 효율)은 돈의 방정식에서 우리가 더 많이 조종할 수 있는 부분이고, 미래에도 지금 만큼이나 효과적일 것이 확실하다. 만약 부를 쌓는 것이 더 많은 돈이나 더 큰 투자수익률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1970년대의 에너지 재앙론자처럼 회의적이 될지도 모른다. 앞 길은 험난하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부를 쌓는 것이 나 자신의 검소함과 효율을 통해 촉진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미래는 더 분명해 보인다.
부란 벌어들인 것을 쓰고 난 후 남은 것이 축적된 것에 불과하다. 소득이 높지 않아도 부를 쌓을 수 있지만, 저축률이 높지 않고서는 부를 쌓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소득과 저축률,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명확하다.
부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당신과 나의 순자산이 똑같다고 해보자.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투자를 더 잘한다고 하자. 나의 연간 수익률은 8퍼센트인데 당신의 연간 수익률은 12퍼센트다. 그러나 나는 돈 문제에 있어서 당신보다 더 효율적이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 규모는 자산이 늘어나는 것만큼 빠르게 규모가 커지는 데 반해, 나는 그 반만큼의 돈만 있어도 만족한다고 치자. 투자를 더 잘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보다 형편이 더 좋다. 투자수익률이 더 낮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 투자로부터 더 큰 혜택을 얻는다.
소득도 마찬가지다. 더 적은 돈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면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격차가 만들어진다. 이는 월급이 커져서 생기는 격차와 비슷하다. 하지만 더 쉽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
저축률이 높다는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지출이 적다는 뜻이다. 지출이 적다는 것은 저축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를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라. 연간 투자수익률을 0.1퍼센트 높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까? 전문가들은 수백만 시간의 연구와 수백억 달러어치의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렇다면 잠재적으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을 더 추구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전문 투자자들은 투자수익률 0.1퍼센트 포인트를 높이기 위해 일주일에 80시간을 죽어라 일한다. 그러나 더 적은 노력으로도 재무 상태에서 라이프스타일의 거품을 2~3퍼센트 포인트 덜어낼 수 있다.
높은 투자수익률과 두둑한 월급을 챙길 수만 있다면 더 없이 멋질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그러나 금융 방정식의 한쪽에 너무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다른 한쪽에 너무 적은 노력을 쏟아붓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저축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을 늘리는 것이다.
누구나 기초적인 것은 필요하다. 그것들이 충족되고 나면 또 다른 수준의 안락하고 기초적인 것들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을 지나면 다시 또 안락하고, 즐겁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기초적인 것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서 소비를 하는 것은 대개 (자신의 소득과 관련된) 자존심의 반영이며, 내가 돈이 있다고 혹은 있었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행위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저축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겸손을 늘리는 것이다. 저축을 당신의 자존심과 소득 사이의 격차라고 정의해 보라. 그러면 꽤 높은 소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왜 그처럼 저축을 적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나의 공작 깃털을 끝까지 늘여서, 역시나 똑같이 하고 있는 남들과 보조를 맞추고 싶은 본능과 매일매일 투쟁하는 것과 같다.
재무 상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반드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아니다) 중에는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축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각보다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저축은 돈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욕망을 줄이면 돈도 덜 쓸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을 덜 쓰면 욕망도 줄어든다. 여러 번 언급했듯 돈은 금융보다 심리와 더 많이 연관되어 있다.
저축을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집 계약금을 마련하려고, 새 자동차를 사려고, 은퇴에 대비하려고 저축을 한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구입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야만 저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저축 그 자체를 위해 저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모두가 그래야 한다.
구체적 목표를 위해서만 저축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나 합당한 얘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측 가능하지 않다.
저축은 최악의 순간 우리를 기절초풍하게 만들 수 있는 불가피한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다.
특별한 지출 목표가 없는 저축의 또 하나 좋은 점은 7장에서 논의한 부분이다. 즉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유형적인 것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반면 무형적인 것들은 헤아리기가 어렵고,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저축의 뻔한 목표가 되는 유형적인 것들보다 돈이 주는 무형적인 혜택이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훨씬 더 가치 있고 큰 도움이 된다.
지출 목표가 없는 저축은 우리에게 선택권과 유연성을 제공하며 내가 원하는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내 뜻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게 해 준다.
저축하는 그 한 푼 한 푼은 다른 누군가가 가질 수도 있었던 미래의 포인트를 나에게 돌려주는 것과 같다.
은행에 있는 현금은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든다.
은행에 있는 현금은 우리가 커리어를 바꾸고 싶을 때, 일찍 은퇴하고 싶을 때, 어떤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때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는 인생에 있어 대단한 혜택이다. 이 가치를 수치화할 수 있을까?
나는 계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너무 크고 중요해서 가격을 붙일 수 없다. 그리고 말 그대로 계산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자율을 계산하듯이 그 혜택을 계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산할 수 없는 것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없으면 불운이 던지는 대로 무엇이든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면 황금 같은 기회가 눈앞에 뚝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있다. 이게 바로 저축의 숨은 혜택이다.
어쩌면 은행에 있는 이자율 0퍼센트짜리 저축은 엄청난 혜택을 줄지도 모른다. 저축이 있다면 월급은 적지만 내가 바라는 더 큰 목적이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저축이 있다면 간절한 순간 갑자기 찾아온 절호의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남과 나를 구분 짓는 경쟁 우위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세상이 심하게 지역 중심적이었다. 역사학자 로버트 고든 Robers Gordon에 따르면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인의 75 퍼센트가 전화기가 없었고 정기적인 우편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경쟁도 지극히 지역 중심적이었다. 평균적인 지능을 가진 노동자라 하더라도 그 동네에서는 최고일 수 있었고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다른 동네에 있는 더 똑똑한 노동자와 경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초연결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경쟁해야 할 인재 풀이 우리 동네의 수백, 수천 명에서 전 세계 수백만, 수십억 명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특히나 근육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일하는 직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교육, 마케팅, 분석, 컨설팅, 회계, 프로그래밍, 저널리즘 심지어 의학 분야까지도 점점 더 글로벌 인재 풀에서 경쟁하는 환경이 되고 있다. 디지털 화가 전 세계의 경계를 지워버리면 이런 분야는 더 늘어날 것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en의 말처럼 말이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
경쟁 범위가 확대되면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내가 눈에 띌 수 있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똑똑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대답이 아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다. 매년 미국의 대학수능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 사람만 600명 가까이 된다. 그와 몇 점 차이 나지 않는 사람이 7,000명이다. 승자독식의 글로벌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은 점점 더 우리의 직접적인 경쟁자가 되고 있다. 지금처럼 서로 연결된 세상에서 지능은 믿을 만한 이점이 아니다. 그러나 '유연성'은 이점이 될 수 있다.
지능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능력이 자동화된 세상에서 경쟁우위는 복잡한 소프트 스킬 sofs okill 쪽으로 기운다. 소통 능력, 공감, 그리고 유연성 같은 것 말이다.
유연성이 있다면 커리어에서도, 투자에서도 좋은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필요할 때 새로운 능력을 배울 수 있는 확률도 높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줄 아는 경쟁자를 급히 뒤쫓아야 한다는 압박도 덜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열정을 가진 일, 나에게 꼭 맞는 일을 나만의 속도에 맞춰 찾을 수 있는 여유가 더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상을 찾을 수도 있고, 더 느리게 살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가정들을 가지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능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우위가 아닌 세상에서 당신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몇 안 되는 능력이다.
내 뜻대로 쓸 수 있는 시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을 더 많이 갖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화폐 중 하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저축을 할 수 있고, 그리고 해야만 한다.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너무 이성적이 되려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다.
저축이라니, 이 웬 고리타분한 얘기인가.
그럼에도 당신이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
상황에 휘둘려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율권을 갖고 싶을 때
예고 없이 찾아온 황금 같은 투자 기회를 잡고 싶을 때
그 순간 기대 없이 잠자고 있던 저축은 당신의 인생을 구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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