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금융 신호를 읽지 않도록 조심하라.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의 붕괴로 가계 자산은 6.2조 달러가 감소했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졌을 때는 8조 달러 이상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금융시장의 거품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융시장의 거품은 인생을 망쳐놓는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그리고 왜 '계속해서' 일어 나는 걸까? 우리는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까? 흔히 나오는 답은 사람들이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탐욕은 지울 수 없는 인간 본성의 특징이라고도 한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 답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1장에서 한 이야기를 잊지 말자.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후회할 금융 의사결정을 내린다. 종종 별 정보도 없이, 아무 논리도 없이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결정을 내릴 당시에는 그 의사결정이 말이 된다. 그저 탐욕을 탓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사람들이 왜, 어떤 식으로 탐욕스러운 의사결정을 합리화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놓치게 된다.
경제 거품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힘든 이유 중에는 거품이라는 게 암과 달라서 조직검사를 통해 명확한 진단이나 경고를 낼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경제 거품은 오히려 정당의 부상 및 몰락과 더 비슷하다. 지나고 보면 결과는 알 수 있지만 원인과 책임에 대해서는 절대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투자수익을 내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고, 자산은 매 시점마다 반드시 누군가 소유주가 있다. 이 말은 곧 거품이라는 개념이 논란의 대상이 될 거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소유주가 누구든 자신이 고평가 된 자산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교훈을 배우기보다는 빈정 거리며 손가락질이나 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경제 거품이 왜 발생하는지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전쟁이 왜 일어나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거의 언제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그 이유 중에는 상충하는 것들도 많으며, 모두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간단한 답을 내놓기에는 너무 복잡한 주제다.
그렇지만 흔히 간과되기도 하고 당신에게도 직접 해당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를 제시하겠다. '투자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투자자로부터 신호를 읽는다!
금융 세계에는 나쁜 개념이 하나 있다. 악의는 없어 보이지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는 개념이다. 바로 '자산에는 단일한 합리적 가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정작 투자자들은 서로 다른 목표와 시간 계획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오늘 구글의 주가는 얼마여야 하는가? 그 답은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30년을 내다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향후 30년간 구글의 예상 현금 흐름을 할인율로 할인하는 냉철한 분석이 들어가야 좋은 가격이라고 할 것이다.
10년 내에 현금화할 계획인가? 그렇다면 향후 10년간 기술업계의 잠재력과 구글의 경영진이 비전을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격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내에 팔 생각인가? 그렇다면 구글의 현재 제품판매 사이클과 약세장이 오지 않을지를 눈여겨보라.
데이 트레이더day trader (초단타 매매를 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좋은 가격이 '무슨 상관'인가? 지금부터 점심시간 사이에 몇 달러를 쥐어짜 내는 것은 어느 가격대에서든 벌어질 수 있다.
투자자들이 서로 다른 목표와 시간 계획을 갖고 있다면(실제로 모든 유형의 자산에서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가격이 다른 사람에게는 합리적일 수 있다. 서로 눈여겨보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닷컴버블을 예로 들어보자. 1999년 야후 주가를 보고 "미쳤네! 도대체 매출의 몇 배야?! 말도 안 되는 밸류에이션이었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999년에 야후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많은 투자자들은 워낙에 시간을 짧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말이 되는' 일이었다. 데이 트레이더에게는 야후의 가격이 주당 5달러든 500달러든, 그날 주가가 움직이는 방향만 맞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몇 년간 실제로 그래 왔다.
금융시장의 철칙 하나는 '돈은 끝까지 투자수익률을 쫓아간다'는 것이다. 어느 자산에 탄력 momentum (모멘텀)이 붙으면, 다시 말해 한동안 해당 자산의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면 일단 단기투자자들이 해당 자산의 가격이 계속 오를 거라 가정하는 것은 미친 생각이 아니다. 무한히 오를 거라는 게 아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단기간만 오르면 된다. 모멘텀이 단기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꽤나 합리적인 일이다.
그러고 나면 본격적인 질주의 시기다. 단기수익률의 모멘텀이 충분히 많은 돈을 끌어들이면, 대부분 장기투자였던 투자자 구성이 단기투자로 옮겨가면서 거품이 형성된다. 이 과정은 자체적으로 강화된다. 투자자들이 단기수익률을 끌어올리면 더 많은 투자자가 모여든다. 머지않아(오래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지배적 주체는 시간을 더 짧게 보는 투자자들이 된다.
거품은 가치 상승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현상, 즉 더 많은 단기투자자가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투자 시간 지평 sime horizons 이 줄어드는 현상의 징후일 뿐이다. 투자 후 매도하여 수익을 얻기까지의 기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다음을 보자.
흔히 닷컴버블은 미래에 대한 비이성적인 낙천주의가 지배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가장 흔했던 헤드라인 중 하나는 거래량이 신기록을 썼다는 발표였다. 이는 투자자들이 '하루 안에' 사고팔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투자자들, 특히나 가격을 결정하는 투자자들은 향후 20년을 생각하지 않았다.
1999년에 평균적인 뮤추얼펀드의 연간 수익률은 120퍼센트였다. 기껏해야 그들은 8개월 정도를 내다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뮤추얼펀드를 사는 개인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매기 마하르 Maggie Mahar는 <불Bull》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언론은 연간 성적표를 분기 보고 서로 대체했다. 이런 변화는 투자자들이 실적을 쫓도록 자극했다. 투자자들은 서둘러 달려가 차트 제일 위에 있는 펀드를 샀다. 펀드 가격이 가장 비쌌던 시기에 말이다.
당시는 데이 트레이딩과 단기 옵션 계약, 실시간 시장 해설이 횡행하던 시대였다. 장기적 관점과 결부시킬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주택시장 거품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향후 10년간 자녀들을 키우려고 플로리다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침실 두 개짜리 주택을 70만 달러에 산다는 것은 정당화하기 힘들다. 하지만 몇 달 후에 해당 주택을 오른 가격으로 다시 시장에 내놓고 단기차익을 얻을 계획이라면 충분히 말이 되는 결정이다. 실제로 거품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애텀 Attom은 주택시장 거품 기간 동안 부동산 거래 이력을 추적하여 데이터로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12개월 내에 한 번 이상 거래된 주택 수는 2000년 1분기 2만 호에서 2004년 1분기 10만 호 이상으로 다섯 배가 증가했다. 거품이 꺼진 후 단기차익 거래는 급감하여 분기당 4만 호 이하로 떨어졌고, 이후 대략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단기차익 거래자들이 장기적인 주택수익 비율을 신경이나 썼을까? 자신들이 지불하는 가격이 장기적인 소득 증가로 뒷받침될 거라 생각했을까? 물론 아니다. 그런 숫자들은 이들의 게임과 관련이 없었다. 단기차익 거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달 주택가격은 이달보다 오를 거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오랫동안 그랬다.
이들 투자자에 대해 할 말은 많다. 투기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수 하는 것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비이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거품이 형성되는 것은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장기투자에 참여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자라고 있는 모멘텀을 붙잡기 위해 사람들이 단기거래 쪽으로 움직이는, 어느 정도 이성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모멘텀이 큰 단기수익률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앉아서 가만히 지켜봐야 할까? 절대 아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윤을 쫓는다. 단기거래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장기투자를 지배하는 규칙들(특히 밸류에이션 관련)은 무시된다. 지금 하고 있는 게임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태는 흥미로워지고 문제도 발생한다.
거품이 피해를 주는 것은 장기투자자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게임을 하는 단기거래자들로부터 신호를 읽기 시작할 때다. 1999년에 시스코 Cisco의 주식은 300퍼센트가 올라 주당 60달 러가 됐다. 이때 회사의 가치는 6,000억 달러에 이르렀으니 정신 나간 가격이었다. 시스코가 그 정도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데이 트레이더들이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경제학자 버턴 말키얼Burton Malkiel이 언젠가 지적했듯이, 그 가격은 시스코의 성장률이 20년 내에 미국 경제 전체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신이 1999년 당시의 장기투자자라고 상상해 보자. 시스코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가격은 60달러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격에 시스코 주식을 사고 있다. 그러니 당신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을 수 있다. "우와, 이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따라 샀을 수도 있다. 심지어 똑똑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스코 주가의 한계 가격을 결정하고 있던 거래자들은 당신과 전혀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당 60달러는 그 거래자들에게는 그런대로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날 안에, 아마도 주가가 더 올랐을 때 주식을 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달러는 당신에게는 예고된 참사였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기적으로 그 주식을 보유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투자자들은 서로가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른다. 하지만 같은 운동장에 서서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둘의 경로가 충돌하면 다치는 사람이 나온다. 금융과 투자에 관한 많은 의사결정들이 남들이 뭘 하는지를 지켜보며 그들을 흉내 내거나 그들과 반대로 투자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행동을 계속할지, 무엇 때문에 마음을 바꿔먹을지, 그들이 과연 교훈을 배우게 될지 당신은 알 수 없다.
CNBC의 어느 평론가가 "이 주식은 사셔야 합니다."라고 말 한다고 해보자. 이때 그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 당신은 재미로 투자하는 10대인가? 가진 돈이 얼마 없는, 남편 잃은 노부인인가? 이번 분기가 끝나기 전에 실적을 맞추려는 헤지펀드 매니저인가? 이들 세 사람의 우선순위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특정 주식이 어느 수준에서 거래된 든 세 사람 모두에게 알맞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른 투자자들이 나와 다른 목표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사람들이 나와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자는 최고 수익을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이는 마약과 같아서 기업 가치를 의식하고 있던 투자자 들마저 촉촉한 눈빛의 낙천주의자로 돌변시킬 수 있다. 나와는 다른 게임을 하는 누군가의 행동에 휘말려 내 현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면 돈을 쓰는 방식마저 바뀔 수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소비자 지출의 많은 부분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교묘히 받아 소비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동경하기를 은근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이 자동차, 주택, 옷, 휴가에 얼마를 쓰는지는 불 수 있어도 그들의 목표, 걱정, 포부가 무엇인지는 볼 수 없다. 명망 높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고 싶은 젊은 변호사에게는,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도 일할 수 있는 나 같은 작가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외관이 필요할 수 있다. 그의 구매 행태를 보고 내가 기대치를 잡는다면 나는 곧 실망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그 젊은 변호사와는 달리 그런 곳에 돈을 쓴다 해서 커리어에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나의 스타일이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사실이다. 내가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여기서 알아야 할 건 다음과 같다. 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설득당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알면 놀랄 정도다.
돈을 투자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켜 '투자자'라 부른다. 마치 농구 선수들이 같은 규칙을 가지고 같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깨달으면, 내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이 간단한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래전에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세상이 진짜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고 낙관하는 수동적 투자자다. 나는 향후 30년간 바로 그러한 성장이 내 투자에도 쌓여갈 거라 확신 한다."
이렇게 미션 선언문을 써놓고 나면 관련 없는 모든 것, 이를 테면 올해 시장 성적이 어땠는지, 내년에 경기침체가 찾아올지 등은 내가 하는 게임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그에 설득당할 위험도 없게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30년을 내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10년 내에 현금화할 계획인가?
아니면 1년 내에 팔 생각인가?
아니면 데이 트레이더인가?
당신의 투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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