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임
시민으로서 우리는 시, 구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다른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역할과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지방선거와 국가적 차원의 선거에서 열심히 선거권을 행사함으로써 변화를 이루기 위해 이러한 도전에 응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공동체의 조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대의명분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 기부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책임을 맡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 대신 다른 이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메시아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합니다. 그들은 특정한 권리를 가지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대신, 수준 높은 시민으로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선택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스스로 사회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엘드리지 클리버가 한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문제의 일부이다."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모든 역설에 대한 역설은 우리가 모든 것에 책임이 있음과 동시에 모든 것에 답은 문제의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가진 양면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그의 딸 질의 고등 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의와 거짓 그리고 탐욕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정직, 진실 그리고 연민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약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여기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처럼 이것을 실행한다면,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한 백화점에서 일하던 무명의 재봉사 로사 파크는 버스 좌석을 양보하라는 백인 남자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촉발된 버스 회사의 승차 거부 운동 이 381일 동안 계속되었고, 이 사건은 미국을 변화시켰다. 그녀는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 다녀야 했고, 그녀의 존엄성이 끊임없이 시험을 받았다. 마흔두 살의 이 흑인 여성은 체포되었고 그 후에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로사 파크의 행동과 그 뒤를 이은 많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미국에서 놀랄 만한 법률 개혁을 가능하게 한 대중 운동을 일으키는 밑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로사 파크만큼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세계의 모든 악에 맞서 싸우는 투쟁에 동참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악에 대항하는 투쟁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과 가정을 돌아봐야 하고, 보다 건전한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구체적인 행동은 지역에 서부터." 이 말은 우리의 좋은 행동 지침이 될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지리적 한계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한계점들을 고려해 보면, 지역에서부터 구체적인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생각이 반드시 가정이나 지역 문제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언제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원한다면 나는 단순히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의 의료 보험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세계 시민이기 때문에, 미국 너머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모른 체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는 르완 다.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 동족 살해, 그 밖의 다른 전쟁 등과 같은 범죄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를 했었지만, 이런 지역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내 생활은 내가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일들만으로도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미치지 않고서야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해 볼 수도 없고 또한 모든 일에 대해서 행동하고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서만 생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권리와 입장을 대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때로는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리한 상황이지만 언제 내가 나서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이것은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불확실한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목소리를 높여 그에 대항했어야 했는지 또는 이웃집 남자가 아내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말렸어야 했는지 등의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 우리는 그 당시 처신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서 항상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복잡하고 엄청난 사회적 책임에 직면할 때, 우리가 절망과 탈진 상태에 빠져 버린다면, 우리는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FCE 구성을 위한 워크숍이 열리는 동안, 어떤 흑인 여성 이 흑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 그녀가 느끼는 책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한 백인 남성이 그녀에게 보낸 쪽지를 기억한다. 그때 그 흑인 여성은 온 세상의 무게를 혼자 자신의 어깨 위에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보낸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제 일입니다. 그 쪽지 밑에는 '신'이라고 서명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 인생에서 그리고 넓게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잠시 동안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신에게 맡기 는 것일 때가 있다. 이 말은 미국 알코올의존증환자협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우리 모두가 직계 가족이나 공동체를 돕기 위해 무엇인가 하도록 결정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선별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이 우리를 부르는 방법과 다른 사람을 부르는 방법은 다르 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만큼 숭고한 소명은 없습니다. 작가님은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척이나 숭고한 사람이 되고 ,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소명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옳은 일
10년 전 아내분과 작가님이 위싱턴 DC. 소재 '구세주 교회'에 서 일주일 동안 자원봉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이런 사실은 더 분명해 졌다. 그 교회의 신도들 중 일부는 연방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한 주일 동안 우리는 그 교회의 창립자인 고든 코스비를 잠시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그는 주로 워싱턴 시내 빈민가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였다.
자원 봉사 마지막 날은 아침 7시 30분에 세계은행에서 회의를 하는 걸로 시작되었다. 그 후 많은 상·하원 의원들과의 만남이 이어졌고, 조찬기도회 담당자들과의 만남도 있었고, 오후에는 많은 의원들과의 만남이 계속되었다. 저녁 6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때 우리는 교회 게토센터에서 코스비를 만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내분과 작가님은 그곳에 도착해서 아래층으로 안내되었는데, 그 지하 공간에는 수백 명의 노숙자들이 일회용 알루미늄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었고, 로큰롤 밴드가 조그마한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귀가 멍할 정도였다. 코스비는 우리에게 일회용 알루미늄 접시에 음식을 담아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자고 공손히 청했다. 나는 식당 밖의 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허락했다. 마침내 우리가 조용한 방에서 몇 분 동안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내게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고든 목사님, 전 누구보다도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존경합니다. 제 자신은 그런 일을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일을 하도록 소명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당신과 같은 소명을 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작가님의 말은 지금까지 내가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 돕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FCE는 빈곤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을 해 왔다. 그리고 작가님도 지난 20년 동안 정신 병원을 사실상 폐쇄하여 수많은 중증의 만성 정신 질환자들을 거리로 내몬 주 정부의 결정에 반대해 왔다. 비록 주 정부 결정이 정신 질환자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최근에 개발된 정신 안정제의 혜택과 이런 환자들을 돌보아 줄 '지역정신건강센터'에 대한 환상적이고 달콤한 말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 동기는 주로 경제적인 것이며, 노숙자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경제적 문제에 의해서 생겨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비난을 받아도(내가 했던 많은 평화 운동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체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른 경우에서처럼, 이 경우에도 나의 에너지는 낭비되어 버린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년간 나는 사회 개혁 단체인 (오랫동안 군비 축소를 위해 급진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해 왔던) 베리건신부회 소속의 한 신부님이 강연한 모임에 참석했던 환자의 이야기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그는 이 모임에 서 어떤 사람이 베리건 신부에게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수십 년간 이 일을 해 올 수 있었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그 신부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쯤 이 자리에 없겠지요.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뿐, 결과는 신께 맡깁니다."
3. 시간과 돈
우리는 시민으로서 참여와 책임 정도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기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생에서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없을뿐더러 현실적으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이라고 하는 우리의 자산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참여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작가님은 장성한 자녀를 두고 활발히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55세의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녀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었고 시민운동을 참고해 나갈 수 있는 인내심도 있었다. 그녀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투옥되지 않았다면, 그런 활동을 비생산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수입으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부모에게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해 감옥에 가도록 신이 소명을 내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어떤 일을 할 시기를 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계를 꾸려가고 자녀를 양육하느라 바빠 각자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작가님은 사회 운동가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으나 부모로서는 실패한 많은 시민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들은 분명히 자녀나 가정보다는 사회적 대의를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나 이런 사회운동가들 중 일부는 분명히 그런 일을 하도록 소명을 받았으며, 자녀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된 것이다. 자신들이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강한 시민 의식을 가진 개인들이 그들의 시간과 돈 그리고 다른 자원들을 쏟아부었다.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 의미 있는 많은 공헌을 했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과 가정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영역에서 선을 행하기 위한 노력을 지칭하는 말로 '자유 지원제란 용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대의명분을 위해 일하려고 한다면, 그의 참여는 본질적으로 자발적이다. 자선가는 아무런 대가 없이 스스로 자신의 돈을 쾌척한다. 교사는 빈곤층 자녀들에게 방과 후 개인 지도를 무 료로 제공할 수도 있다. 학생은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가정 주부는 주말마다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을 찾아가 그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자원봉사는 일종의 소명이다.
이것은 직업 선택과 마찬 가지로 정당한 것이며 동시에 복잡한 선택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자원봉사 활동을 해야 하고, 자원봉사의 과정과 결과는 언제나 사회와 자원 봉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나이에 상관없이 자원봉사 활동은 남들을 도움으로써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젊은이들이 가진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이 가진 경륜과 연민은 아주 헌신적인 자원 봉사자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자유 지원제의 선택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하는데, 그중에서 시기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전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간결한 표현이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으며 옷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시기가 중요하듯 개인이 가진 다른 자산들 역시 사회봉사를 할 사람의 역량에 차이를 주는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동 주의를 단순히 극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명으로 여기고, 이 것을 부정합니다. 사회의 선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개인의 안위를 완전히 희생해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몇 년 전 작가님은 노바스코샤에서 있었던 공동체 운동가 학술 대회 논문집을 읽었습니다. 수년 동안 사회 운동과 자유 지원제의 전방에서 일했던 발표자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공헌은 우리 자신이 가난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의 말은 지나친 듯하지만, 작가님의 경험에 의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예를 들어 FCE가 평화 정착과 빈곤척결 운동을 해 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단체가 재정적으로 안정된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이다. 극빈 그 자체는 미덕이 아니지만, 부유함이 곧 탐욕을 뜻하는 지 의문이 든다.
물론 이런 평가는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진실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 역시 진실이다. 돈은 선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 레오나르도 호른스 라는 사람은 돈을 '돌고 도는 신'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돈이 풍족한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벌어들인 돈을 계속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것 같다. 내 생각엔 돈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만약 그 목적이 선을 행하는 데 있다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어떤 경우든지 이런 질문은 돈이 충분히 있다면 결코 제기된 지 않는 문제이다. 다만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결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돈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속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가 자주 있다. 돈은 유혹적인 정부와 같다. (거석을 찾아서 내 영혼을 찾아서》에서 나는 돈이 없었을 때보다 요즘 돈에 대해서 더 많이 걱정한다고 썼다. 이런 걱정 중 일부는 타당성이 있다. '어리석은 자의 돈은 금방 없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작가님 역시 필요 이상으로 돈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며, 그게 돈에 대한 집착이 될 수도 있겠다. 돈을 세고 있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더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돈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의 척도인 것처럼 생각되어 우리를 잘못된 자만심과 자기만족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이런 집착에 빠지기 쉬운 작가님은 1936년 5 월생으로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기에 출생한 세대이다. 파크 애 비뉴에서 보낸 유년기 동안 나의 아버지는 형과 나에게 "너희들은 돈의 가치에 대해서 배워야 해"라고 설교했을 뿐 아니라 "우린 결국 빈민구제소 신세가 될 거야"라고 끊임없이 주장하셨다. 그 당시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말씀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다. 사춘기 때는 데이트 상대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나는 여자들이 좀 비싼 음식을 주문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 후 그런 고민은 극복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이 가난해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만약 내가 뇌졸중에 걸려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만약 우리가 고소를 당하면 어쩌지? 만약 주식 시장이 무너 진다면? 만약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면? 만약에..? 만약에...? 많은 사람들에게 돈과 안정된 생활은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완벽한 안정을 꿈꾸는 것은 환상이다.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인생에서 유일한 안정이란 인생의 불안정함을 즐기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을 기회가 있었다. 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나는 이 깨달음을 설교해 왔고, 이것을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돈은 우리 삶의 안정을 보장해 주는 수단일 뿐, 완벽하게 안정적인 삶이란 환상을 추구하는 한 결코 이뤄질 수는 없다.
아주 부유하지만 남에게 베풀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공허한 망상을 쫓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와 같은 기질 이 있다. 그들처럼 완전히 돈이란 우상의 노예가 되지 않았을지 는 몰라도, 사실 내 기도 생활에서 나의 수입. 투자 그리고 책 판매량만큼 방해되는 것들은 없다.
일부 영적 작가들에 의하면 인 간은 '결핍의 심리'로부터 고통받는 종족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풍요로울 것이고 또한 하느님이 인간에게 넉넉히 베푸실 거리는 '풍요의 심리'를 강요한다. 나는 이런 가르침을 믿는다. 경제 대공황기에 태어난 나는 이 가르침을 따르라고 강요받았고, 그렇게 노력할 것이다. 진정으로 부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세속적인 의미에서 부는 돈과 가치 있는 물건들을 소유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부를 단순한 화폐 가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측정한다면, 많이 소유하진 못했지만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있고, 많이 소유했으나 영적으로 빈곤한 사람이 있다.
심리적 영적 측면에서 본다면, 참된 부자는 신과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남에게 베풀어 줌으로써 자신들도 많은 것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영적인 부유함 또는 세속적인 부유함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있는 축복을 받았던지 간에, 이러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요구가 따른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재능, 돈 또는 다른 자질이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딜레마는 자신의 재산을 어느 정도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분명한 공식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권력과 마찬가지로 돈을 소유하는 진정한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이것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나친 권력처럼, 지나치게 많은 돈을 자신만을 위해 소유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보아서도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