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복
선과 악의 역설은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해 있습니다. 저번에 '원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 역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폭스가 말한 '원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원복은 바로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저번에 말했듯이 우리가 천성적으로 거짓말쟁이. 사기꾼. 도둑, 음모꾼 등이라면, 성인이 된 후 이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본성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인간 본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볼 때마다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 본성은 바지를 입은 채로 화장실에 가는 겁니다." 그게 우리 각자의 출발점입니다. 즉, 자연스럽게 발생이 되는 것을 우리는 느낌이 오면 그냥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살쯤 되면, 부모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넌 정말 착한 아이야. 난 널 좋아해. 그런데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 고맙겠구나." 처음에는 부모의 그런 말이 무슨 뜻인지 아이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하는 것은 그냥 느낌이 오면 배설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아이에게는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참으면서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본 후 자신의 배설물이 물 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는 것이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부모가 참을성이 있고 강압적이 아니라면(불행하게도 이런 좋은 조건들이 갖춰진 경우는 드문데, 그게 바로 우리 정신과 의사들이 용변 훈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아이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정말 내게 잘해 주었어. 난 어떤 방법으로든 엄마에게 보답하고 싶어. 그런데 난 아무런 힘도 없는 두 살짜리 아이일 뿐이야. 그러니 이런 일을 잘하는 것 이외에 내가 어떻게 엄마가 원하는 선물을 줄 수 있겠어?"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엄마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로, 아이들은 매우 비정상적인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제때에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는 것이다.
이 아이가 네 살 또는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용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 때는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만 이불에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이불을 엉망으로 만든 이 사건을 매우 불편하게 느낍니다. 2년 내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아이는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본성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이 능력은 원복인데 너무나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인간 본성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농담처럼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다른 피조물과 인간을 구별 짓는 것은 대칭을 이루는 엄지손가락, 놀라운 기능을 가진 후두 또는 거대한 대뇌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타고난 것이며 미리 정해져 있는 행동양식을 지칭하는 본능의 힘이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의 경우에는 그 본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고정되어 있으며 미리 결정되어 있는 속성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보다 폭넓은 선택권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작가님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평화 구현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지칭합니다. 이들은 작가님 같은 사람을 흔히 이상 주의자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주의자 또는 머리가 멍청한 이상주의자라고 지칭합니다.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그러나 무지하다거나 또는 멍청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상주의자란 말에 대해서 그렇다는 의미이길 바랍니다.
2. 일관성
이상주의자란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작가님은 낭만주의자는 아닙니다. 낭만주의자란 인간 본성이 변할 수 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이 변화 과정이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낭만주의자는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말과 같은 단순한 공식에 마음이 끌립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일하면서 작가님이 더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사랑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거나 성장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본성을 바꾸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변화가 쉽지 않은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격이란 사고와 행동의 결합체, 즉 여러 가지의 정신적 요소들로 구성 된 것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정의에서 '일관적'이라는 단어가 핵심입니다. 개개인들의 성격에는 문화나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관성이 있는데, 여기에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님이 개업을 하고 있을 때 병원에 처음 온 환자 들은 의사가 목단추가 없는 셔츠, 편안한 스웨터 그리고 심지어는 슬리퍼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두 번째 병원에 왔을 땐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강연하러 나가려는 것을 본다 해도, 그건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세 번째 병원에 왔을 때, 의사가 길고 흐느적거리는 푸른색 가운을 입고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마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도 이 환자들은 이 병원에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계속해서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올 때마다 예전과 다름없는 의사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성격이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자들로 하여금 의사를 신뢰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신뢰할 수 있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맡은 바 일을 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일관된 예측 가능한 정도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일관성이 갖는 어두운 측면은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저항성 입니다. 성격은 개인이든 국가든, 본질적으로 변화에 저항합니다. 보다 나은 무엇을 위한 변화라 할지라도 변화는 항상 두려운 것입니다.
3. 변화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온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저런 변화를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막상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결코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변화에 필사적으로 저항합니다. 닫힌 마음을 해방시켜 주려는 정신과 치료는 우리에게 진실의 빛을 보여 줍니다.
“진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지만, 그 진실은 당신을 미치게 만들 것이다"라는 격언은 변화에 대한 우리의 저항감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가능하고, 이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큰 영광입니다. 변화에 대해서 인간이 갖는 본능적인 저항은 게으름 두려움, 나르시시즘 등의 결과인데 원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인간의 본성 중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원복이라 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원하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원죄에 굴복하거나 변화에 저항하거나 정체되거나 또는 퇴보할 것인가. 사회의 변혁과 개인의 변화를 위한 일을 할 것인가 등의 결정은 바로 개인의 선택입니다. 개개인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일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인 오리젠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타성과 변화하려는 노력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이렇게 요약했다.
"영혼은 발전을 의미하며, 악의 정의는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