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그리고 저 너머에

by 수호천사1009 2023. 1. 26.
반응형

1. 통합과 완전함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신앙의 시대에 나타나는 장점과 그 한계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는 이성의 시대가 갖는 한계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직 신앙의 시대에 속해 있다면, 그것은 계몽주의자의 한 사람인 내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을 맹목적 신앙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작가님은 이성을 열렬히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상상력이 없는 편협한 이성은 반대한다. 모든 현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하며,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원적 결정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저주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제한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교육은 세속적이거나 또는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또 폭동은 가족 가치의 붕괴 또는 억압적인 인종 차별주의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공화당이나 민주당. 보수주의 또는 진보주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만 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신앙과 이성. 이 둘 다를 위한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은 진실이다. 신앙과 이성의 특성들을 우리의 삶 속에 통합시킬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완전함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는 누가 이런 표현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는지 모르지만,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몇 명의 신학자들은 '하느님과의 결합'을 찬양한다. 이 표현은 '그리고 and'의 의미를 갖는다. 양자택일의 사고 작용이 아니라, 양자 결합의 사고 작용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성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덧보탠 그 무엇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성과 신비, 이성과 감정, 이성과 직관 이성과 계시, 이성과 지혜, 이성과 사랑 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업가가 이익을 얻으면서 동시에 도덕적일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볼 수 있다.

정치적 질서와 사회 정의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정부, 기술적 숙련과 인간애를 모두 가진 의료 기관. 과학과 종교를 동시에 가르치는 교육 기관 등이 있는 세상도 그려 볼 수 있다. 우리의 미래는 이러한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은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것들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 아무런 색깔이 없는 흐릿한 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이야기할 때, 과학이 무시되는 맹목적 신앙 시대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의 의미가 주일날 한 시간 예배하는 걸로 격하되고, 일부의 과학 분야가 우상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신과의 결합은 완전함을 지향하는 결합이다. 작가님은 이성의 시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지금도 작가님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통합의 시대가 오기를 희망한다. 그 시대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손을 맞잡고 그 결과 과학과 종교는 더 세련되어질 것이다.

2. 성숙한 사고

그러나 이 통합의 시대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보다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 다. 이성이 '하느님과의 결합과 이어질 때마다 우리는 역설과 마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작가님은 공립 학교에서의 가치 교육에 관한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주 교육위원회 위원들에게 열 가지 권고안을 제시할 기회가 있었다. 작가님의 권고안 중 하나는 선불교 과목을 5학년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선은 역설을 위한 이상적인 훈련의 장이다. 내가 지난 20년 동안 선불교에 기웃거린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끔찍한 역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략 열 살쯤 되면 아이들은 역설을 대략적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그 시기는 절대 잊지 않아야 되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 두는 중요한 시기이다. 나는 교육 위원들이 내 권고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이성의 시대에 역설적 사고방식을 습득하기란 쉽지 않다.

역설은 그리스어 어원처럼 '이성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은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그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단어 특히 명사를 이용하여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명사란 카테고리를 나타내는 것이고, 언어를 구획화한다. '고양이 cat'는 콧수염이 있고 털이 많은 육지 동물이다. '물고기 fish'는 비늘이 달린 바다 동물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그러므로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은 물고기과에 속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메기 catfish가 분명히 물고기과에 속한다는 것을 알 고 있다. '삶'과 '죽음' 역시 서로 반대 개념이다.

동사도 그 범주가 정해진다. '찾다 To find'는 '잃다 To lose'의 반대말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역설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사람을 어떻게 해 야 할까? "살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살 것이다." 은총과 뜻밖의 발견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일반적으로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기적에 눈을 돌려 보질 못한다. 그들은 신의 존재와 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신의 은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님의 정체성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나는 증거를 원하고 그것을 좋아한다.

신비적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기 때문에 작가님은 가능하면 사물의 이치를 확신시켜 줄 통계적 증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치고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작가님은 통계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기 시작했다.

아주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황이 가끔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점점 하느님의 흔적을 보기 시작했다. 내 자신의 삶과 환자들의 삶 속에 나타난 그런 사건들을 보고 아직도 가야 할 길과 그 이후에 쓰여진 책에서 많이 다뤘다 나는 은총이 실재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아주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들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이 모든 사건 들은 대부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우연히도 은총과 같은 의미를 가진 동의어를 발견했다. 그것은 '뜻밖의 발견 serendipity'이라는 단어이다. 웹스터 영어 사전에 의하면 '뜻밖의 발견'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나타난 가치 있거나 기분 좋은 선물'이라 는 의미이다. 이 정의에는 아주 흥미로운 요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어떤 사람은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갖고 있지 않는 선물을 뜻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운이 좋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주요 명제 중의 하나는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나타난 가치 있거나 기분 좋은 선물'이란 말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는 은총이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 은 이 은총을 유익하게 이용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은총을 부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은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다. 우리가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선물이 갑자기 주어지면 그 선물의 가치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귀중한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뜻밖의 일들은 우리 모두에 게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흔히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건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충분히 이용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작가님이 지금까지 설명한 은총과 (또는) 뜻밖의 발견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건들은 인간의 삶과 영적 성장을 지지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일조한다.

・그것의 행동 메커니즘은 최근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의해 해석된 자연 과학 법칙의 원리에 의한다면(꿈의 경우처 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상처럼) 완전히 모호하다.

그 발생은 빈번하고, 일상적이고, 일반적이며 특히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다.

・비록 그런 사건들이 인간의 의식에 의해서 잠재적으로는 영향을 받지만, 그 원천은 우리의 의식적인 의지 밖에 있는 것이며, 의식적인 의사 결정 과정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현상들은 인간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며, 인간의 영적 성장을 북돋워 주는 강력한 힘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라고 작가님은 믿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회의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우리는 이런 힘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만질 수도 측정해 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은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은 진실이다. 우리는 역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 힘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물들을 인식하길 원한다. 은총은 역설이다. 한편으로는 은총은 노력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은총으로 축복받은 존재가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인가에 대해 이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다. 반면에 은총을 받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손길을 빠져나갈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은총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은총을 선택하고, 동시에 은총이 우리를 선택한다는 역설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나타난 가치 있거나 기분 좋은 선물'이라고 정의한 '뜻밖의 발견'이라는 현상의 본질일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 때 깨달음이 그에게 찾아오게 했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 적어도 16년이란 시간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헌신 했고, 또 16년의 시간을 이 준비를 위해 헌신했었기 때문에 깨달 음이 그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깨달음을 얻으려 했고 동시에 깨달음을 얻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20년 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출간한 이후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은총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자주 질문을 받았다. 사실 은총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8년 전쯤에 작가님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리는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는 시간은 작가님에게 매우 소중했다. 작가님은 그 시간을 이용해서 주로 글을 쓰기 때문이었다. 작가님은 언제나 노란 공책을 가지고 다녔다. 또 작가님은 부끄럼을 타는 성격이기 때문에 옆 좌석 승객, 특히 그가 술에 취했을 때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내가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에도, 나의 이런 태도는 마치 내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듯한 인상을 상대방에게 줄 것이다.

3. 우연 같은 은총

하트포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그날 아침. 내 옆 좌석 승객 역시 사십 대 초반의 남자로 얌전한 사람이었다. 작가님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고, 기쁘게도 그 역시 나에게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우리는 버펄로까지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노란 공책에 글을 쓰고 있었고, 그는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하여 한 시간 동안 도중하차를 하게 되었고, 그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 승객 대합실로 갔다.

한 시간 후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다시 비행기에 탑승했다. 버펄로를 떠나 미니애폴리스로 향한 지 45 분이 지나서야 우리 사이에 첫 대화가 시작되었다. 글자 그대로 쾌청하기 그지없는 푸른 하늘 때문이었는지 그는 읽고 있던 소설에서 눈을 떼고는 이렇게 말했다.

"방해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선생님께선 혹시 '뜻밖의 발견'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십니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그 주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분량의 글을 쓴 유일한 사람이고, 그가 '뜻밖의 발견'이란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연히도 그 주제에 대한 전문가 옆에 앉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마도 뜻밖의 은총 같은 게 아니겠느냐고 대답해 주었다(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번 생각해 보라! 또한 은총이란 통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며 동시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내가 정의한 것을 기억해 두라).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나는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그와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뜻밖의 발견'에 대해서 내가 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심리학과 종교의 통합을 다룬 것이라고 말했다. "난 종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이어서 그는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나 수십 년 동안 그 교리를 지키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인지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투성이지요. 나는 교회를 떠나야 할 사람인 것 같고 교회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요." 그 대답으로 나는 회의주의와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다뤘던 내용인 '성스러움으로 향하는 길은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모태신앙 자가 완전히 성숙한 종교인으로 나아가는 데는 그렇게 의문을 가져 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미니애폴리스 공항에서 헤어질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어쩌면 교회를 떠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반응형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고 저 너머에  (0) 2023.01.28
그리고 저 너머에  (0) 2023.01.27
그리고 저 너머에  (0) 2023.01.25
그리고 저 너머에  (0) 2023.01.24
그리고 저 너머에  (0) 202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