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 사례 연구
1984년 말부터 1995년 말까지 중년 말기의 아내분과 작가님은 정말로 많은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많은 시간과 다른 자원을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1984년은 생애 두 번째로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해였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대의명분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대의명분은 평화였다. 아내분과 작가님은 재단을 만드는 게 어떨지 의논하기 시작했어요.
몇 달 동안 우리는 500개나 되는 여러 성격의 평화 단체들을 하나로 묶는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은 우리가 어떤 평화 재단을 설립하든 그것은 501번째의 단체가 될 거라는 점이었다. 점차로 우리는 공동체 건설이 평화보다 더 기본적인 일이며, 공동체 건설이 평화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1984년 12월 아홉 개의 다른 단체들과 연계하여 FCE를 설립했다. FCE는 비과세· 비영리 대중 교육 기관으로 그 임무는 공동체의 원칙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 단체 안에서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건강한 의사소통의 원칙을 가르치는 것이다. 설립 이념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평화에 대한 갈망이 있다. 과거에 맺었던 여러 가지의 관계 속에서 받았던 상처와 거부의 경험 때문에,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는 단순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을 다 함께 모이게 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
공동체 건설 재단의 임무는 바로 이와 같은 규칙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우리의 희망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고 인간의 영광을 거의 잊어버린 세상에서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이 책의 부제는 '공동체 건 설과 평화'이다)에서 나는 공동체 건설이 가지는 가치는 평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체 건설은 많은 사람들이 직위, 소득, 학력 그리고 종교적·문화적 • 인종적 정체성 때문에 나타나는 의사소통의 장애물 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물들이 무를 배우는 과정에서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마음을 완전히 열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완전히 개방적인 의식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일종의 기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공동체 건설은 세파에 시달린 사람들의 위선적인 껍질을 뚫고서 그들이 가진 순수함의 본질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기, 감정, 판단, 반응 등을 깊이 있게 살펴보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자아의식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의식 역시 확대하게 된다.
지난 11년 동안 아내분과 작가님은 대략 수입과 시간의 1/3을 FCE 활동을 하는데 바쳤다. 우리는 각자 일주일에 대략 12시간 정도를 FCE를 대표하는 일을 하면서 보냈다. FCE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아이를 갖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그런 활동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을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거석을 찾아서 내 영혼을 찾아서》에서 썼듯이 우리가 FCE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비영리 기관의 운영 방식도 모르는 그저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무리였을 뿐이었다. 만약 그 당시 누가 내게 전략적 기획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면, 작가님은 미 국방성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 비슷한 어정쩡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특히 FCE는 비영리 기관이었지만 그것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영리 기관과 같은 정도의 운영 방식을 알고 있어야 했는데 우리는 경영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두 경영에 대해 배워야 했다.
전략적 기획뿐만 아니라 마케팅, 회의 조직, 자원 봉사자 관리, 구조 조정, 기금 조성과 개발, 컴퓨터 시스템, 우편 목록, 목표 및 미래 비전 보고서, 회계 절차 등 여러 가지를 배워야 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다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과 역할 분담과 권한 문제를 어떻게 조정하고 어떻게 명시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했다. 지난 십여 년 간 우리가 배운 대부분의 사실은 다른 사람 들과 FCE 관리 업무를 해 온 결과였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배움의 과정이었다.
수차례에 걸쳐 우리는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실수를 했었다. 재정과 관련된 가장 고통스러 웠던 결정은 우리의 개인 재정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자선 단체 인 FCE와 관련된 것이었다. FCE는 1990년에서 1992년까지 계속된 경기 침체로 인해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6개월 동안에 걸쳐 유능한 직원을 해고하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인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예산을 75만 달러에서 25 만 달러로 하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WASP (앵글로색슨계 신교도로서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 루는 지배 계급 - 옮긴이)로서 어느 정도의 존엄성을 지키며 인 생을 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로서는 FCE를 위해 내가 해야 했던 일 중 가장 힘든 일은 바로 기금 조성이었다. 나는 구걸은 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2. 시
3년 동안 기금 조성 일을 한 후에 나는 1987년 그 고뇌와 좌절을 담은 <어느 걸인의 삶(기금 조성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나는 간청한다. 거리를 헤매며 목표물의 뒤를 쫓으며
다시 저 얼굴들을 보게 될까?
아니면 그 옷차림이라도?
옷차림을 보면서 나는 그들을 재어 본다.
저 사람은 가난해 보여. 저 남자는 단정한 모습이 아니야.
저 여자는 너무 평범해. 저 사람은 하찮아 보이고.
그래.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은 부유해 보이고
이 사람은 착실해 보이고
이 사람은 영향력 있어 보여
나는 그 사냥감을 향해 다가가고
가볍게 무시당한다.
나 또한 그들처럼
더 나은 삶을 찾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내가 훌륭한 거지가 아니라는 것.
나는 끊임없이 거리를 헤맨다.
밤에는 초라한 꿈 속에 빠져 든다.
다음 주 집세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 채,
나는 생각에 잠긴다.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네겐 이 일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지.
그들은 모두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게 낫다고 해.
그들도 나와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나보다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얼굴을 쳐다볼까?
몇 사람은 그렇다고 하지.
그 얼굴에는 죄책감이 보이고
그러면 그걸 이용하는 거지.
난 그런 비열한 수를 쓸 수는 없어.
내가 도덕적이어서 아니라,
그것은 어쩌면
그들 역시 무엇인가 필요한 사람들일지 모르기 때문이지.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을까.
누가 걸인인지. 가진 건 많지 않지만
나 또한 베풀어야 할 소명을 받지는 않았을까?
가진 게 많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너무 많은 일을 하지 말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진실.
나는 모든 거리를 누비고 다닐 수 없다.
언제나 그리고 확실히 나는 그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다.
난 잘하는 게 없어.
언젠가는, 나 역시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장님 친구가 있다.
그는 정말 잘한다.
그는 그곳에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움직일 필요도 없이
상처 입은 눈을 위로 치켜뜬 채
그러면 돈은 쏟아지고
그러나 내겐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인가?
난 내 눈을 빼내 버릴 용기도 없다.
이 모든 선택에 대해
얼굴을 쳐다보는 데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계속 돌아다닌다.
그들의 옷만 쳐다보려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부산히 돌아다니지만
그래도 잘하지 못한다.
이것은 걸인의 삶이다.
여기서 말한 것은 부정적인 면들이다. 만약 긍정적인 면들이 없었다면 나는 기금 조성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종교 들은 구걸 행위를 명예롭게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굴욕 감은 정신 수양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작가님은 알고 있었어요. 작가님의 재산인 주식과 채권에 기대어 느긋하게 앉아 즐길 수도 있었던 그때에, 신이 나를 다른 사람의 배려에 의지해야 하는 위치에 있게 해 준 것은 행운이었다.
3. 기부
그 당시 작가님에게는 새로운 좋은 친구를 사귀는 문제가 있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의명분을 위해 선뜻 돈을 기부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액 기부는 마치 은총의 발현인양 우리가 몹시 필요로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자주 이루어졌다.
돈을 기부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시어스 로벅의 경영 귀재이면서, 줄리어스 로젠월드 기금의 설립자인 줄리어스 로젠월드는 언제가 이렇게 선언한 적이 있다.
"백만 달러의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보다는 정직하게 백만 달러의 돈을 버는 것이 더 쉽다." FCE에 돈을 기부한 많은 소액 기부자들과 소수의 거액 기 부자들은 단순히 이렇게 말한다.
"이 수표를 받으세요. 여러분들은 정말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저는 여러분을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돈을 내는 일이 고작 이군요."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거액의 기부자 들은 때로 그들이 낸 기부금이 잘 운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들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보다 기부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기부는 아내분과 작가님의 경우처럼 감정적 보상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FCE에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을 냈지만, 중요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도 내주었다는 것이다. 최근 FCE에는 4명의 정규 직원만 있다. 그러나 백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